‘1거래소 1은행’ 제도 흔들… 대선 민심에 여·야 앞다퉈 완화 약속

거래소·투자자·은행 모두 현 체제 불만 시장 과열 우려에 금융당국은 '신중'

2025-05-17     원재연 기자

가상자산 거래소가 특정 은행 한 곳과만 계좌를 연동할 수 있는 이른바 '1거래소 1은행' 규제가 대선을 앞두고 도마 위에 올랐다. 업계에서 폐지 필요성을 역설하는 가운데 정치권의 공약 채택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금융당국은 자금세탁 방지라는 본래 취지를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점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 = 뉴스1

17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나란히 '1거래소 1은행' 원칙 폐지를 대선 공약에 포함했다. 민주당은 최근 혁신벤처단체협의회와의 정책협약식에서 한국핀테크산업협회로부터 해당 제도 개선 요청을 전달받았다. 국민의힘은 한발 앞서 지난달 가상자산 7대 공약 중 하나로 이 규제의 폐지를 공식화한 바 있다.

'1거래소 1은행'은 특정 거래소가 단일 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법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 기준이 불명확해 은행들이 거래소당 1곳만 계약하는 방식으로 관행화됐다. 현재 '업비트는 케이뱅크', '빗썸은 KB국민은행', '코인원은 카카오뱅크', '코빗은 신한은행', '고팍스는 전북은행'과 각각 제휴를 맺고 있다.

1거래소 1은행 관행은 2021년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 이후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사실상 정착됐으나, 거래소와 은행 모두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거래소 입장에선 단일 은행에 트래픽과 입출금이 집중되면서 장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입장이다. 은행 측에서는 신규 시장 진입이 원천 차단돼 경쟁이 어렵다는 불만이다.

이용자 불편도 적지 않다. 특정 거래소를 이용하기 위해선 해당 거래소가 제휴한 은행에 별도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수는 1800만명 이상으로, 5대 거래소 예치금만 10조원을 넘어선다. 특정 은행에 자금이 집중되는 구조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복수 은행 체제가 구축된다면 은행 입장에서도 거래 확대에 기회가 생긴다"며 거래소와 복수 은행간 계약에 대해 긍정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제도 완화에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독과점 구조와 자금세탁 리스크를 더 들여다봐야 한다"며 "은행과 거래소가 관련 위험을 방지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재 업비트와 빗썸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약 72%, 25% 수준으로, 5대 거래소 중 두 곳이 전체 거래량의 97%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복수 은행 제휴가 허용될 경우 대형 거래소에 계좌와 자금이 더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상자산 업계는 오는 하반기 국회 논의가 예정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2단계 입법 과정에서 관련 규제 개선이 함께 논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치권의 공약 이행과 맞물려, 실명계좌 발급 기준 명확화 및 가이드라인 정비가 병행될 경우 제도 변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단일 제휴 구조는 특정 은행과 거래소 간 지나친 종속 관계를 만들어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저해한다"며 "은행 간 서비스 질 경쟁이 실질적인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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