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중심으로…투자 판 바꾸는 디지털자산 [금융 AI혁신 ④]
비트코인ETF 도입 논의 재점화…스테이블코인도 입법 채비
가상자산이 투자의 중심 무대로 이동하고 있다. 한때 일부 개인 투자자의 고위험 투기 수단으로 인식되던 가상자산은 이제 글로벌 자산 운용사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되고, 제도권 금융이 주목하는 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23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디지털자산 관련 제도 정비와 상품 다양화로 시장 내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증시에서는 2024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11개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은 뉴욕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도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가상자산 ETF 출시를 준비하고, 정치권은 스테이블코인 인가제를 포함한 입법을 본격화하고 있다.
가상자산 ETF 출시 눈앞…글로벌 흐름에 국내도 반응
가상자산ETF는 제도권 자금 유입을 유도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 이후,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비트코인 ETF인 IBIT에는 70억달러 이상이 유입됐고, 피델리티·인베스코 등 글로벌 운용사들도 잇따라 시장에 진입했다.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아직 허용되지 않았지만, 선물 ETF를 중심으로 상품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자산운용은 2023년 홍콩 거래소에 ‘삼성 비트코인 선물 액티브 ETF’를 상장했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글로벌X 계열을 통해 호주와 캐나다에서 선물 ETF를 운용 중이다. 한화자산운용 역시 국내 현물 ETF 허용 시 가장 먼저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해외 직접투자를 통한 우회 수요도 뚜렷하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국내 투자자들이 고위험 레버리지형 비트코인 선물 ETF에 투자한 금액은 1500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현물 ETF에 대한 시장의 기대와 수요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권 역시 ETF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김문수 후보 모두 현물 ETF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으며, 금융투자업계는 관련 제도 정비를 전제로 상품 출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통화제도 전환기, 정책 시험대에 오른 스테이블코인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 투자와 맞물려 확장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역할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실제 통화와 1:1 호환을 목표로 생성된 디지털자산이다. 디지털 생태계의 유동성을 책임지는 핵심 자산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법정화폐 기반의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권은 이를 대선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청년 자산형성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디지털 통화의 질서 있는 수용’을 강조하며 제도적 기반 마련을 언급했다. 반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준비금 담보 구조와 불법 유통 가능성을 지적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입법 논의는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초안이 중심이다. 민주당은 스테이블코인 인가제와 발행요건, 환급 책임 등을 포함한 조항을 발의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가 인가 권한을 갖는 구조가 유력하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인가 단계부터 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실제 한은은 주요 거래소로부터 예치금과 거래대금, 투자자 수 등 자료를 수집해 시장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동시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실증 실험도 병행하고 있으며, 오프라인 결제 환경에서도 시범 테스트를 확대 중이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디지털 통화 질서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발행 구조와 환급 가능성, 자금세탁 방지 체계 등이 투명하게 정비될 경우,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섭 서울대 교수는 “CBDC는 국가 간 지급결제 시스템의 상호운용성과 금융포용을 높일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 역시 이에 상응하는 공공성과 신뢰를 갖춘다면 제도권 편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