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오르면 상속세 늘어… 그룹 지주사 PBR 뒷걸음질 [대기업 저평가 ②]

승계 이슈 지주사 PBR 평균 0.5배… 코스피200 절반 현대차 정의선, HD현대 정기선, 롯데 신유열… 상속세 민감

2025-06-02     윤승준 기자

대기업 지주사 주가 저평가는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 들어 아예 고착화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밸류업 프로그램(기업가치 제고) 로 일부 고배당 종목들이 선전하는 사이, 더 뒷걸음질치기만 한 것. 심지어 시가총액이 청산가치인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는 고사하고  절반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주가가 오를수록 상속세 부담이 커지다 보니 주가부양을 등한시 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룹 지주회사는 주가 부양에 소극적이었고 일부 총수 일가는 주가 하락 시 지분을 매입하며 지배력 강화 기회로 삼았다.

2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공시대상기업집단 92곳 중 최대주주가 만 65세 이상인 그룹의 지주사 PBR은 평균 0.56배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가동된 1년 전(0.74배)보다 저평가 수준이 악화됐다. / 각 사 CI

2일 한국거래소 및 공정거래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공시대상기업집단 92곳 중 지주회사(실질적 지주사 역할 포함)를 주식시장에 상장한 그룹은 총 44곳에 이른다. 이들 44개 지주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난달 말 기준 평균 0.8배로 코스피 전체 평균(0.92배)을 밑돈다. PBR 1배를 넘긴 그룹은 한진(한진칼 2.96배), 두산(두산 5.87배) 등 5곳에 불과했다.

배경에 기업 승계 이슈가 있다. 최고 60%인 상속세율을 고려할 때 총수 일가로선 그룹 지배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지주사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게 유리하다.

실제 승계를 앞둔 그룹일수록 저평가가 더 심각했다. 상장 지주사를 둔 44개 그룹 중 최대주주(실질적 지분율 상위)가 만 65세 이상인 그룹은 18개였는데 이들의 지주사 PBR은 평균 0.56배에 그쳤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가동된 1년 전(0.74배)보다 더 악화됐다.

그룹 지주사별로 보면 ▲현대모비스 0.5배 ▲롯데지주 0.34배 ▲HD현대 0.91배 ▲GS 0.29배 ▲LS 0.95배 ▲코오롱 0.29배 ▲OCI홀딩스 0.33배 ▲LX홀딩스 0.34배 ▲삼천리 0.29배 ▲에코프로 3.58배 ▲HL홀딩스 0.36배 ▲동국홀딩스 0.15배 ▲유진기업 0.27배 ▲BGF 0.23배 ▲하이트진로홀딩스 0.36배 ▲농심홀딩스 0.3배 ▲현대해상 0.4배 ▲한솔홀딩스 0.2배 등이다.

승계 앞둔 대기업 그룹 지주회사 PBR 현황 / 윤승준 기자

정의선 현대모비스 PBR 0.5배, 상속세 8천억

주식을 물려받아야 하는 오너가 후대 입장에서 주가는 아킬레스건이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구축, 정의선 회장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7.24%를 상속할 경우 정 회장이 내야 할 상속세는 8000억~9000억원이다.

HD현대그룹도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으나 HD현대 지분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26.6%, 정 수석부회장이 6.12%로 차이가 크다. 롯데그룹도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씨를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승계 작업에 시동을 걸었으나 신 부사장이 보유한 롯데지주 지분은 0.1%에도 못 미친다.

GS 및 LS그룹은 ‘사촌 간 공동승계’를 하고 있으나 다음 항렬 구성원이 지분을 추가 매입해야 해 주가가 낮을수록 유리하긴 마찬가지다. 코오롱그룹도 이웅열 명예회장의 코오롱 지분이 49.74%로 여전히 높고 후계자인 이규호 부회장은 1% 미만인 상황이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그룹 수석부회장,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 / 조선DB

이렇다 보니 지주사는 밸류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승계를 앞둔 그룹 소속 지주사 18개 중 밸류업 공시를 낸 회사는 4곳에 불과했다. 농심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 농심은 밸류업 공시를 냈으나 지주사인 농심홀딩스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솔그룹도 계열사 한솔케미칼은 밸류업 공시를 냈고 지주사 한솔홀딩스는 발표가 없었다. 승계와 연관된 지주사의 주가 부양을 막으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할 만한 대목이다.

주가 저평가는 지배력 확대의 기회가 됐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작년 5~7월 11차례 지분 매입에 나서며 약 44만주를 늘렸다.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도 작년 6월·9월·12월 3차례 지분을 매입하며 1만6416주를 확보했다. GS도 최근 1년간 허선홍 씨 10만주, 허선홍 씨 1970주, 허성윤 씨 2만3664주, 허원홍 씨 1만3178주, 허성준 군 1633주 각각 늘렸다.

김규식 변호사(비스타글로벌운용 펀드매니저)는 “상장은 대규모 공모 자금이 필요할 때 하는 건데 (그룹들은) 자회사를 거의 다 상장을 해서 지주사까지 상장할 이유가 없다”면서 “결국 상속세 절감을 위해 지주사를 상장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고 상장을 했다면 연결 합산 주주환원율이 50%가 넘어야 하는데 주주환원도 턱없이 모자라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sjyo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