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유치 나섰던 시중은행, 시니어로 눈돌려

은퇴자산 활용, 연금·상속 등 서비스 속속 진출

2025-05-28     한재희 기자

‘50세 이상 전용 대출’, ‘내 집에서 받는 종신연금’…

최근 국내 주요 은행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금융상품이다. 주로 시니어층을 겨냥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중은행의 관심은 미래 고객인 ‘MZ세대’로 대표되는 20~30대에 쏠려 있었다. 모바일 기반 소비층으로 미래 먹거리 선점 차원의 전략이었다. 

최근 은행들은 시니어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은퇴 이후 연금 자산으로 생활하는 주머니 두둑한 시니어 계층 공략을 통해 이자 이익뿐 아니라 비이자 이익을 확대하겠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28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상반기 내 서울 영등포에 ‘하나 더 넥스트 라운지’를 개소한다. 을지로와 선릉, 서초에 이은 것으로 시니어 고객을 위한 오프라인 전문 소통 공간이다. 시니어 고객이 방문했을 때 공간과 시간에 제한 없이 상담을 비롯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KB국민은행은 시니어 고객 특화 이동 점포인 KB 시니어라운지를 운영 중이다. 이른바 찾아가는 은행으로 시니어 고객이 은행 방문 없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시니어플러스 점포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특화 점포 외에 시니어 전용 상품도 진화 중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민간형 주택연금 상품인 ‘하나더넥스트 내집연금(역모기지론)’을 출시했다. 본인 또는 배우자가 55세 이상이고, 공시가격 12억원 초과 주택에 거주 중이면 가입할 수 있다. 해당 주택을 하나은행에 신탁하면, 하나생명이 본인 및 배우자 사망 시까지 매월 연금을 종신 지급한다.

특히 종신 지급 방식에 비소구(非遡求) 조건을 붙여, 연금 수령 총액이 집값을 초과하더라도 상속인에게 부족액을 청구하지 않는 구조다. 초과분은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고 잔여 자산은 유산으로 남는다. 가입자 상황에 맞춰 정액형, 초기 증액형, 정기 증가형 등 다양한 연금지급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만 50세 이상 ‘액티브 시니어’ 전용 대출 상품을 처음 선보였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친 후 새로 취업한 50대가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용 가능한 상품이다. 연 1200만원 이상 근로소득과 연금소득을 합산해 최대 1억원까지 빌릴 수 있다.

은행들은 시니어 고객 잡기에 나서면서 차별화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전담팀도 꾸렸다. KB국민·신한·하나은행이 시니어 전담 태스크포스로 전략을 가다듬었다. 연금 중심에서 요양, 상속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다.

국민은행은 연금과 보험, 카드 부문 계열사와 협업 중이며 신한은행은 연금라운지와 디지털금융 교육센터 확대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지난해부터 시니어 특화 브랜드 ‘하나더넥스트’를 운영하며 전담 라운지와 생애설계 상품들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토스뱅크도 시니어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중장년층을 겨냥한 자산관리 및 예금 상품을 준비 중이다. 

/IT조선

이러한 변화는 고령화와 경제적 변화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간 젊은 층 고객 확보에 집중한 것이 성장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시니어 고객 유치는 고령화 추세에 따라 새로운 주요 금융소비자층이 옮겨갔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단순히 예적금, 대출 등의 영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비이자이익 확대 등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차원에서 젊은층은 물론 상속과 자산관리 등 신탁사업 등에 ‘큰손’이 될 시니어 고객들 잡기에 나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가구의 평균 자산은 6억1488만원으로 전 세대 중 가장 많고, 60세 이상도 5억8251만원에 달한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는 은퇴를 앞뒀지만 ‘제2의 인생’ 설계에 관심이 높고 투자 활동 역시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첫차’, ‘첫집’, ‘첫 금융거래’ 등 인생 초기 단계의 자산관리에 초점을 맞추며 젊은 층 고객을 유입시키는 데 주력한 것 처럼 시니어 고객 역시 단순히 ‘나이 많은 예금자’가 아닌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복합적인 금융소비자로 다가가고 있다”며 “전 연령층의 고객 확보를 위한 차별화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곧 은행의 수익 다각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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