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소주’에 푹 빠진 필리핀 [르포]

K드라마 영향 ‘삼겹살+소주’ 찾는 현지인 늘어

2025-05-28     필리핀 마닐라=변상이 기자

“타가이!”(건배)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삼겹살라맛’ 식당. 한국의 ‘건배’와 비슷한 ‘타가이’를 외치며 원샷을 하는 현지인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진로’ 소주와 함께 ‘삼겹살’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명 ‘삼쏘’로 불리는 삼겹살과 소주의 조합이 이제 필리핀 국민들에게도 대표 주류 문화로 자리잡은 셈이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식당 ‘삼겹살라맛’에서 MZ세대들이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 하이트진로

현지인 랄리(29)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소주 마시는 장면을 보고 호기심에 접하게 됐다”라며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마시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삼쏘를 즐기는 건 랄리 뿐만이 아니었다. 

대학생 골디(21)는 “농구를 보거나 친구들과 파티할 때 즐겨먹는데, 삼겹살과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전했다. 함께 식당을 찾은 로즈(22)는 ‘딸기에 이슬’을 주로 즐겼다. 그는 “딸기소주를 마시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라며 웃었다.

이처럼 필리핀에서는 한류 열풍를 타고 소주 문화를 즐기는 현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K-푸드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진로’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필리핀 현지에 70여개 매장을 보유한 ‘삼겹살라맛’에서는 진로와 함께 식사를 즐기는 현지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한인 주류 납품 업체인 K&L 강정희 대표는 “소주가 과거에는 한국인을 위한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현지 고객들이 먼저 찾는다”며 “진로는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 경험을 확장시키고, 매장 상품기획자(MD)와 현장 브랜딩을 통해 인지도와 회전율을 모두 확보한 드문 사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거래처 중에서 한식당 말고 로컬 식당에 공급하는 곳도 있는데 진로를 많이 취급한다”라며 “이전에는 ‘소주 주세요’라고 하면 무작위로 처음처럼이나 좋은데이 등 다른 브랜드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손님들이 먼저 ‘진로 주세요’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S&R 멤버십 쇼핑에서 열린 진로 시음행사장. / 하이트진로

실제 하이트진로가 글로벌 비전으로 ‘진로의 대중화’를 선포한 가운데 필리핀 시장에서 일반 소주 인기가 커졌다는 평가다. 앞서 하이트진로는 2019년 7월 수도 마닐라에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현지화에 나섰다.

특히 진로는 필리핀 소주 시장 진출 초기부터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024년 관세청 무역 통계 기준의 필리핀 소주 수출 총액과 하이트진로의 자체 수출 실적을 비교한 결과 약 67%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에서 진로가 흥행할 수 있던 배경에는 주요 소비층이 교민에서 현지인 중심으로 전환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2013년 약 8만8000명이던 필리핀 내 재외동포 수는 2023년 약 3만4000명으로 61%쯤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의 필리핀 소주 수출량은 약 3.5배 증가했고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약 41.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하이트진로는 과일리큐르에서 일반 소주로의 음주 문화 변화, 대부분 유통 채널에서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점이 진로의 현지화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진로 브랜드는 현지 최대 유통사인 PWS(Premier Wine&Spirits, Inc.)와 SM그룹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 위치한 회원제 창고형 할인 매장인 S&R 멤버십 쇼핑(Membership Shopping), 전국 약 4000여개 매장을 보유한 세븐일레븐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 폭넓게 입점했다.

기자가 방문한 S&R 멤버십 쇼핑에서도 한국에서 볼 법한 소주 시음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주류 시음행사를 연 곳은 하이트진로가 유일했다. 현지 소비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진로 시음코너에 들른 얼윈(43)은 “바텐더로 일하던 중 진로를 알게 됐다. 다른 종류의 술에 비해 깔끔하고 부드러워 음식과 같이 먹기에 부담이 없다”라며 “친구들과 주말에 모임하는 경우 레귤러, 과일소주 등 다양한 진로 제품들을 마시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핀의 대형 도매형 할인점인 ‘퓨어골드’ 매장에도 진로와 과일 리큐르 제품군이 주류 코너 중심에 진열돼 있었다. 퓨어골드 관계자는 “진로는 외국브랜드지만 한국 음식점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데일리 술’로 자리 잡고 있다”며 “최근 1~2년 사이 판매 속도가 빠르게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앞으로도 필리핀 전역의 주요 매장에 단독 진열 공간을 확보해 진로의 접점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필리핀 시장이 아시아 지역 1인당 알코올 소비량 상위 국가인데다 주변 국가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동남아 어느 국가보다 한류의 영향이 높아 포기할 수 없는 시장으로 꼽힌다.

국동균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장은 “맥주·스피릿·와인 모든 주류가 성장하고 있지만 스피릿(증류주) 시장의 경우 올해는 전년 대비 35% 고성장했을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특히 소주의 판매 비율로 보면 가정시장이 71%, 유흥시장이 29%을 차지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판매 채널 확대에 나설 것이다”고 말했다. 

필리핀 마닐라=변상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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