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도 아닌데 0%대 성장률… 한은 “금리 더 내린다”(종합)
美 관세 정책이 관건 시장선 연말 기준금리 2.0% 예상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에서 0.8%로 낮췄다. ‘0%대’ 성장은 2020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영향으로 글로벌 경제는 물론 우리나라 수출 둔화 폭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과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다. 한은은 금융 안정을 우려하면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고 연내 추가 인하도 시사했다.
한은은 2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2.75%에서 0.25%포인트 인하한 2.5%로 결정했다. 이는 올해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서 내수 회복 등 경기 대응 필요성이 커져서다.
이날 한은은 수정경제 전망을 통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2월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한국 경제 수준이 크게 악화했다.
단기간에 경제 전망이 달라진 배경엔 미 정부의 관세 정책 영향이 가장 컸다. 미국의 관세 정책 강도가 2월보다 광범위해지고 관세율이 높아진 영향을 받았다.
한은은 지난 2월엔 5~10%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전제했는데 이번 전망에서는 기본 10%, 품목 25% 관세를 적용했다.
한은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재점화하고 미국 상호관세가 유예 기간 후 절반 정도 다시 높아질 경우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0.7%, 1.2%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웅 부총재보는 기자설명회에서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다양하겠지만 미국의 관세가 0.35%포인트를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내 건설 경기 침체 영향이 컸다. 건설투자는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끌어내렸다. 민간소비 회복도 예상보다 더뎌 성장률을 0.15%포인트 낮췄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 경제가 1% 미만 성장했던 때는 1980년(-1.6%),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등 금융위기 상황과 맞물려 있다. 특히 최근 들어 0%대 성장률은 코로나19 충격을 받은 지난 2020년(-0.7%) 이후 처음이다.
금융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0%대 성장률 충격이 예상되자 한은은 이날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올해 2월에 이은 추가 인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내수는 부진이 점차 완화되겠지만 그 속도는 더딜 것으로 보이며 수출은 미국 관세부과 영향 등으로 둔화 폭이 확대될 것”이라며 “향후 기준금리 인하 폭이 조금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하 폭과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경제 전망의 상·하방 리스크가 모두 있는 데다 금융 안정 리스크에도 유의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 데이터를 보면서 금리 추가 인하의 속도와 폭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특히 기준금리 인하로 금융안정을 해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경제 성장률이 크게 낮아졌지만 시장 유동성이 충분한 상황에서 금리를 너무 빨리 낮추면 경기 부양보다 주택 등 자산 가격으로 유동성으로 흐르는, 우리가 코로나19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시장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유동성 추가 공급은 기업 투자나 실질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기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당분간 1%대 기준금리를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연내 최대 2회 인하를 예상하는 분위기다. 0.25%포인트씩 두 차례 인하하면 기준금리는 2.0%가 된다.
최재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대미 무역 흑자폭이 크고 품목별 관세 영향이 더 크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부과 받는 수준이 크게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국내 경제가 구조적인 측면에서 겪고 있는 내수 회복 제약은 단기간내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금리 인하 사이클은 이어질 전망”이라고 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올해 통화정책 전망은 8월과 11월 추가 인하로 연말엔 기준금리 2.0%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면서도 “미국 통화정책, 국내 추경 효과 등을 감안해 2.25%에서 멈출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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