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시장과 소통하는 디지털 경제 대통령
“차라리 횡재세가 낫지요. 사업계획을 짜려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이 있는 게 수월하거든요.”
한 국내 금융사 고위 임원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난해 야당을 중심으로 실제 논의가 오고 갔고, 윤석열 전 대통령 또한 은행과 통신을 콕 집어 과점 폐해를 지적했던 만큼, 언젠가 시행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금융업계 전반에 깔린 불안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소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차라리 횡재세를 내는 게 낫지, 상생금융을 이유로 온갖 포퓰리즘 정책을 금융권에 강요하는 정치권의 압박이 더 괴롭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이제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주 사전투표에서 첫날까지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전국민의 관심이 뜨거웠다. 비상계엄으로 치르는 선거라 내란세력을 종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있게 제기되지만, 이미 과반 의석을 점유한 야당이 집권까지 하게 되면 막가파식 통치가 자행될 거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을 비롯한 시장 참여자들의 시선도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 예금과 대출, 주식과 채권, 보험과 카드 등, 우리 삶 전반에 얽힌 금융산업은 정치의 방향에 따라 가장 먼저 움직이는 민감한 지표다. 새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이 판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시장이 바라는 건 단순하다. 예측 가능한 경제정책, 시장과 대화하는 정부, 그리고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이다. 대출 만기 연장이나 이자 유예 같은 정책도 시장과 충분히 조율된 끝에 나와야 시장이 흔들리지 않는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시장을 무시하면 결국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지난 정부가 남긴 교훈도 여기에 있다. 비상계엄령 같은 반민주적 조치는 단지 정치적 논란을 넘어 시장의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정권 말기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끝난 건, 민주주의를 저버린 것만이 아니라 시장과의 단절도 주요 원인이었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다르지 않다. 둘 다 ‘예측 가능성’이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방적인 관세폭탄을 던지며 무역분쟁을 격화시키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의 시장은 아날로그가 아닌 초연결의 디지털 시장이다. 더 이상 물리적 회의나 서류 중심의 자료만으로는 시장과 통하지 않는다.
AI가 시장을 분석하고, 로보어드바이저가 투자 전략을 설계하며, 오픈뱅킹과 디지털 보험, 가상자산까지 금융의 모든 것이 소프트웨어화되고 있는 시대다. 정책 역시 디지털 언어로 말하고, 디지털 채널로 반응해야 시장과의 실질적 소통이 가능하다.
시장과 금융권이 기대하는 건 단순한 '경제 대통령'이 아니다. 자영업자와 청년, 노년층을 모두 포용하되, 시장의 원칙을 이해하고, 디지털로 빠르게 반응하며, AI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금융의 방향을 설계할 줄 디지털 경제 대통령이다. 아날로그 사고방식에 머문 리더로는 지금의 금융질서를 감당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신뢰다. 당장의 표를 의식해 말을 바꾸는 정치가 아닌, 정책의 철학과 방향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정치를 우리는 원한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 정부가 디지털과 시장, 양쪽과 모두 통할 수 있는 진짜 ‘경제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손희동 금융부장
sonn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