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제재 2배 늘었는데… '책무구조도' 무용지물 우려
1~5월 제재 공시 11건→21건, 과태료·과징금 부과액 3억→313억원 급증 과태·과징금 교보증권 50억 최다
금융감독원이 증권사에 내린 제재가 1년 새 2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부과된 과태료·과징금은 10배 이상 급증했다. 상품 불완전판매 등 내부통제 미비에서 비롯된 사안이 대부분이었다. 업계에선 책무구조도 시행을 통해 증권사의 불건전 영업행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나 대표의 이사회 의장 겸직 등 미비점이 적지 않아 취지대로 효과를 크게 낼지는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30일 금감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금감원이 증권사 13곳에 내린 기관 제재 공시는 총 21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 11건(9개사)과 비교해 10건 늘었다. 아직 5월이지만 연간 기준으로도 2021년 9건, 2022년 13건, 2023년 9건, 2024년의 18건을 이미 넘어섰다.
기관 제재란 금감원이 금융사를 검사한 후 법령이나 감독규정, 내부통제 기준 등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금융사에 내리는 사후 제재다. 업무 일부 정지 및 기관 주의·경고 등과 같은 행정제재(징계)와 과징금 및 과태료 부과 등 행정벌(금전적 제재)로 구성된다.
제재별로 보면 업무 일부 정지 및 경고·주의 건수가 10건으로 늘어났고 과태료·과징금 부과도 7건에서 14건으로 급증했다. 경고 또는 주의와 과태료 또는 과징금 처분을 동시에 받은 경우도 12건에 달했다. 증권사에 부과된 과태료·과징금은 2억9200만원에서 313억500만원으로 1년 새 100배 넘게 불어났다.
회사별 제재 건수를 보면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3건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증권과 키움증권, 현대차증권, 유안타증권이 2건으로 뒤를 이었다.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교보증권, iM증권, SK증권, 유진투자증권은 각각 1건씩의 제재를 받았다.
과태료·과징금 부과액을 보면 교보증권이 50억56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투자 45억800만원 ▲하나 34억3000만원 ▲KB 32억6400만원 ▲유안타 32억1800만원 ▲유진투자 32억원 ▲미래에셋 22억6000만원 ▲현대차 21억8000만원 ▲SK 20억9000만원 ▲NH투자증권 20억원 등의 순으로 컸다.
제재 사례를 보면 고객 이익을 해치고 자사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한 ‘투자일임업자의 불건전 영업행위 금지 위반’이 많았다. 일례로 교보증권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투자일임계약을 맺은 수백명의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이를 위반했다.
금융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 사례도 다수 적발됐는데 KB증권은 2020년 일반투자자에게 펀드를 판매하면서 설명확인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사모펀드·신탁상품을 판매하며 설명의무를 반복적으로 위반하기도 했다.
증권사 절반, CEO가 이사회 의장 겸직
금감원의 증권사 제재가 급증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7월 2일 정식 시행하는 증권사 책무구조도에 주목하고 있다. 책무구조도 시행으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경우 내부통제 실효성이 커져 상품 불완전판매 등과 같은 금융사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제재할 때 기관 전체를 제재하기보단 해당 임직원에게 책임을 물어 기관 제재 빈도가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다만 증권사 상당 부분이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어 내부통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책무구조상 운영 과정에서 대표이사는 관리조치의 내용과 결과 등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의 총괄 관리의무 이행을 감독하면서 대표이사 등이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점검·평가하는 역할을 하는데 두 개를 모두 겸하면 이해상충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책무구조도 대상인 증권사 22곳 중 10곳(한국투자·메리츠·KB·신한·대신·한화·현대차·IBK·유진·부국)이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던 오너 2세 원종석 신영증권 회장은 최근 대표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일부 증권사는 최대주주 또는 특수관계인을 비상임이사라는 이유로 책무 배분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책무구조도시범운영 컨설팅을 진행하며 증권사의 미비점까지 확인했으나 “금융사별 사정에 따라 책무구조도가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고 밝히며 개선을 권고하는 데 그쳤다.
이를 두고 책무구조도 성공을 위해선 권한이 집중된 대표이사를 견제할 수 있는 외부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면 책무구조도 도입 취지와 다르게 독립성 측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CEO가 내부통제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견제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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