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구원투수’ 김용범, 정책실장 발탁…스테이블코인 속도 내나

실명계좌 설계자에서 정책실장으로…제도화 전환점 기대

2025-06-10     원재연 기자

이재명 정부 초대 대통령실 정책실장에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임명되면서, 국내 가상자산 정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으로 시장이 혼란에 빠졌을 당시, 실명계좌 제도를 도입해 사실상 가상자산 시장을 구한 인물이 정책 컨트롤타워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문진영 사회수석, 김용범 정책실장, 강 비서실장, 하준경 경제성장수석, 류덕현 수석급 재정기획보좌관.  / 뉴스1

10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김 정책실장의 발탁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디지털 자산 육성 기조와 맞물리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 주요 정책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자산 친화정책으로 명망… 업계서도 인정

김 정책실장은 1986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후 재무부, 재정경제부, 금융위원회 등 핵심 경제 부처를 두루 거치며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금융시장 안정대책 등 주요 국면에서 실무를 주도했다.

금융위 부위원장과 기재부 제1차관을 지내며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포함한 대외경제 대응을 총괄했고, 공직 퇴임 후에는 국내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 산하의 싱크탱크인 해시드오픈리서치(HOR) 대표로 민간 정책 연구를 이어갔다.

정책 결정자로서의 실적 중에서도 가상자산 시장에 미친 영향은 특히 크다. 2018년, 정부가 거래소 폐쇄 방침을 논의하던 시점에 은행 실명계좌 제도를 도입하며 특금법 기반의 최소한의 규제 틀을 제시해 가상자산 산업의 생존 공간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민간 싱크탱크를 통한 정책 제안 활동에 주력해왔다. 해시드오픈리서치는 최근까지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다수의 정책 제안 보고서를 발간해왔으며, 김 정책실장은 해당 보고서들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강점을 살릴 경우 원화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책 철학도 뚜렷하다. 지난달 해시드 주최로 개최된 세미나에서 김 정책실장은 "통화주권은 스테이블코인을 억제해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화하고 우리가 직접 설계함으로써 지킬 수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이 곧 디지털 신원, 결제 수단, 정책 집행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를 국가 통화정책 인프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 중심 발행 기조 강조… 기존 당국 반발 극복해야

김 정책실장이 제시한 스테이블코인 모델은 기존 금융당국 기조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 그는 해시드 재직 당시 발표한 '디지털 G2를 위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설계도' 보고서에서, MMF(머니마켓펀드), 국채, 현금 등을 준비자산으로 삼는 다중 구조형 민간 스테이블코인 모델을 제안했다.

해당 모델은 발행·소각·감사·공시 기능을 스마트 콘트랙트로 구현하고, 발행 주체로 자산운용사와 핀테크 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금융당국 중심의 감독체계보다 민간 자율성과 유연성을 강조한 방향으로, 향후 정책 논쟁의 핵심 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러한 구상이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디지털자산위원회 신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등을 공약해왔고, 최근에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먼저 설계해 국부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향후 정책 설계 과정에서는 한국은행의 반대 논리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민간 주도형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입법 측면에서도 조율해야 할 부분이 상당하다. 금융위원회는 현재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을 준비 중이다. 입법안에는 민간 발행 허용 여부, 준비자산 요건, 금융위 인가체계, 자금세탁방지 체계 등 전반적인 규율 체계가 담길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김용범 정책실장은 시장과 제도를 두루 경험한 드문 인물이라, 업계에서는 기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견해차도 큰 만큼, 실제 정책 설계 과정에서 얼마나 조율이 이뤄질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