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게임 산업 위협하는 '질병코드'…최대 12조 피해·통상 분쟁 우려

2025-06-14     천선우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ICD-11)에 등재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실제 각국의 정책 반영 여부와 도입 방식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우리나라는 ICD-11을 반영한 KCD 10차 개정안은 2027년 고시되며, 시범 적용을 거쳐 2031년부터 공식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산업계, 학계, 법조계를 중심으로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려 사항으로 과학적 근거 미비, 국내 게임 산업 위축, 국제 통상 마찰 가능성을 지적하며, 보다 면밀한 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 챗GPT 생성 이미지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정책학회는 13일 서울 광화문 CKL 기업지원센터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대응 특별세미나’를 열고 관련 쟁점을 집중 논의했다.

유현석 콘진원 원장 직무대행은 “게임은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 전략산업 중 하나다”라며 “질병코드 도입은 문화산업의 이해와 과학적 근거,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라고 강조했다.

“의학적 근거 부족”… 글로벌 신중론과 엇갈리는 한국

세계적으로는 게임 질병코드를 채택하지 않거나 공식화하지 않은 국가가 대다수다. 미국, 일본, 독일, 스페인, 인도, 프랑스, 호주 등은 민간 자율 규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정신의학회가 발간한 정신질환 진단 기준서(DSM-5)에서 게임이용장애를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연방정부 역시 WHO 기준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옥스퍼드대학교와 카디프대학교 공동 연구에 따르면, 게임이 의학적 장애로 분류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본은 중앙정부의 직접 규제보다는 일부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이용 시간 제한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가가와현은 2020년부터 중학생 이하 청소년의 게임 이용 시간을 평일 60분, 주말 90분으로 제한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진 않았지만, KCD 개정 과정에서 WHO 기준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과거 개정 사례들이 WHO 권고안을 기반으로 진행돼 온 만큼, 이번에도 같은 흐름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KCD는 국제적인 기준인 ICD의 주요 분류 체계와 코드를 따른다. 다만, 국내 실정에 맞는 추가나 세분화 된 이뤄진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韓 질병코드 도입 시 최대 12조 피해… 국제 통상 분쟁 우려도

하지만 게임 질병코드 도입 시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김동현·김상태 법학 교수의 공동 논문에 따르면, 질병 코드 도입으로 인한 산업 피해는 최소 5조원에서 최대 12조원을 초과할 수 있다. 게임이용 제한, 경고표시, 인증절차 강화, 광고 금지 등 후속 규제가 시행될 경우, 글로벌 기업들과의 마찰도 불가피하다.

김종일 법무법인 화우 게임센터장은 “질병코드를 채택하지 않은 국가들은 한국의 추가 규제를 국제 통상 분쟁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다”며, “과잉금지원칙 위반과 기본권 침해 문제로 인해 국제 무역기구(WTO) 등에서 한국이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민관협의체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나, 정부 내 부처별로 입장 차이도 존재한다. 보건복지부는 WHO 기준을 반영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명확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게임을 마약처럼 취급하지 않겠다"며 진흥 중심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 K-컬처와 디지털 콘텐츠 육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게임 질병코드에 대한 정부 입장 변화 가능성도 주목된다.

천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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