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금융사고 1900억원… ‘금융판 중대재해법 1호’ 누구

2025-06-26     한재희 기자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인 책무구조도가 본격 시행된지 반년이 지났다. 금융권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지난해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1월부터 적용됐지만 은행권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 과거 사고를 적발한 경우지만 책무구조도 도입 이후에도 발생한 금융사고도 있어 누가 ‘1호 제재 은행’ 멍에를 쓰게 될지 은행권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올해 상반기 주요 은행의 금융사고 규모가 1800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DALLE

26일 은행업계 등에 따르면 이날까지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14건이다. 우리은행의 해외지점 금융사고(1건)도 포함된 숫자다. 여기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3건)과 인터넷전문은행(1건), SC제일은행(2건) 등 주요 은행들까지 범위를 넓히면  20건이다. 이는 전년 상반기(6건)과 비교했을 때 세 배 이상 늘었다.

사고 금액은 1960억원에 이른다. 이들 중 올 상반기 금융사고 건수가 가장 많았던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올해 들어 공지한 금융사고는 총 5건, 금액은 490억원 수준이다. 전세대출 사기에 연루된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부당대출과 금품수수 등이 걸린 사고도 한 차례 적발됐다.

이어 국민은행이 4건의 금융사고를 신고했고 농협은행 2건, 신한은행 2건을 공시했다. 금액으로 보면 농협은행이 226억원, 국민은행 110억원, 신한은행 37억원 순이다.

기업은행의 경우 총 3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기업은행은 880억원 규모의 배임 사고가 적발이후 최근엔 또 직원이 연루된 41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고가 터졌다.

SC제일은행의 금융사고 금액도 145억원 수준이다. 토스뱅크에서도 27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인터넷전문은행 가운데 첫 사례다. 여신과 관련된 금융사고가 아닌 재무팀장이 회사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난해 유예기간을 거쳐 올 1월부터 금융사고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책무구조도가 시행됐음에도 금융사고가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사고 규모도 커졌다. 제일은행에선 부당한 서류를 통해 이뤄진 여신거래를 통해 130억원의 부당 대출이 이뤄졌고 기업은행원에선 부동산 담보가치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과다대출을 일으켜 발생한 사고가 920억원이 넘는 수준이다. 금융권의 내부통제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떤 직원이나 부서, 경영진이 어떤 책임을 지는지 명확히 정해 문서화한 것으로 조직 내 ‘책임지도’다. 

과거 대규모 금융사고 발생시 경영진과 실무진 사이에서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일각에서는 경영진이 ‘꼬리자르기’를 한다는 반발도 적이 않았던 만큼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고 이에 따라 내부통제 시스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당국은 사건의 경중을 따져 제재를 결정하고 사안이 중대할 경우 임원 제재까지 가능하다.

지난해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은행들은 유예기간을 거쳐 올 1월부터 본격 적용을 시작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1호 제재 금융사가 되는 것을 경계해 왔다.

금융사고 발생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하는 만큼 올해 들어 금융사고가 발생한 국민은행이나 토스뱅크 등이 ‘1호 제재’ 은행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당국에선 책무구조도 적용 첫 대상인 만큼 사고의 중대성과 위법행위의 경도 및 정도, 내부통제 의무 이행 여부 등을 집중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이전에 발생한 금융사고 건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힌 상황. 그러나 올해 들어 발생한 건은 엄격하게 볼 수밖에 없다. 다만 관련 임원이 내부통제 관련 책임과 의무를 적극적으로 다했다면 제재를 피해갈 수도 있다. 올해 모든 금융사고가 책무구조도 대상이지만 제재 여부는 사안별로 결정되는 것으로 별개인 셈이다.

업계는 책무구조도에 따른 제재 1호 회사가 되는 것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첫 제재 은행이 될 경우 ‘내투통제에 약한 은행’이라는 낙인 효과와 신뢰도 하락 등을 피할 수 없어서다. 실무진 사이에서는 책임 경계가 모호하고 구조도만으로 책임자를 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부른 적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 적용 1호 제재 회사가 된다면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회사로서 타격이 불가피한만큼 첫 번째가 되지 말자는 게 업계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라며 “내부통제 강화 기조에 맞춰 조직 문화를 바꾸는 등 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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