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너가는 금리인하 가능성… 가계부채 증가에 고심 커진 한은
수도권 일부 지역의 집값 상승과 함께 가계대출 잔액이 급증하면서 한국은행의 셈법이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지난 1분기 경제가 역성장한데 이어 연간 성장률이 0%대로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준금리를 인하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하지만 가계대출이 발목을 잡아서다.
정부가 가계대출 수요를 제한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 제한 등 긴급 처방에 나선 상황. 하지만 대출이 실행되기까지 시차가 발생하는 만큼 가계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추가 인하 시점이 늦춰질 거란 분석도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에만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이 6조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기준 이들 은행의 가계 대출 증가액은 4조원에 달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 4월 4조5337억원, 5월 4조9964억원 등으로 지속 증가했다.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시점이 올 여름이 아닌 10월로 미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6월과 7월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8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10월에야 금리를 내렸다. 당시 경기 침체 우려에도 금리를 늦게 내렸다며 한은의 ‘실기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은은 집 값 상승과 함께 가계부채가 증가하면서 신중모드에 돌입했다. 최근 금융안정보고서 와 간담회 등을 통해 내달 동결 결정의 시그널을 보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25일 ‘금융안정보고서’ 관련 설명회에서 “금리인하 기조로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세가 가계대출 급증과 부동산시장 과열로 이어져 금융불균형을 확대시키지 않도록 정부 관계부처와의 정책 공조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지난 24일엔 유상대 한은 부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주택 가격과 함께 가계부채도 빠르게 오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현재 서울 일부 지역이기는 하지만 주택가격이 굉장히 빠르게 상승하고, 그에 따른 가계부채도 상당히 염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화정책 결정시 가계부채가) 그동안에도 고려 요소였지만, 더 큰 고려 요소가 됐다”며 “물가와 경제 흐름을 보면 금리 인하 사이클에 있지만, 금융안정 상황 때문에 시기와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최근 물가안정설명회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한은은 경기를 보고 금리를 결정하겠지만, 과도하게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기대심리를 증폭시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지난달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사록’을 보면 만장일치 금리 인하를 결정하면서도 통화 완화가 주택가격·가계대출을 자극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위원은 “경기 둔화 예상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의 주택 가격은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주택 관련 대출 규제와 거시건전성 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다른 위원은 “성장 전망이 크게 하향 조정된 현 상황에 비해 금리 인하 속도가 다소 느린 면이 있지만, 서울·수도권 주택가격 불안이 지속되는 점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 위험을 점검하며 그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한은은 오는 7월까지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 대출 실행에 시차가 발생하는 만큼 1~2달 후까지도 추세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진욱 씨티 이코노미스트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율 기준 10% 넘게 상승했는데 이는 금융안정 관점에서 한은이 용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주택가격이 추가로 상승한다면 다음 금리 인하 시점은 8월에서 10월로 늦춰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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