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삼천피라고 박수 치기엔
“기대감 때문에 오르는 거죠. 달라진 건 없잖아요?”
코스피가 3년 5개월 만에 3000선을 돌파했던 지난 20일. 사석에서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은 “증시가 모처럼 활기를 띄게 돼 반갑다”면서도 한 편으론 지금 장세가 얼마나 갈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시장의 기대감이 과도하게 반영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경제는 기대심리를 무시할 수 없다. 향후 경기를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실제 경제도 그렇게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비자심리지수, 기업경기실사지수와 같은 경기지표들이 주요 지표로 유의미하게 쓰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하지만 주가지수는 여러 조합들이 만들어 낸 고차방정식이다. 기대심리 외에 기업의 펀더멘털이 좋아야 든든하게 뒷심을 받쳐줄 수 있고,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선순환해야 활황장세가 오래간다. 여기에 실탄이 되어줄 유동성이 꾸준히 공급돼야 한다.
지금 어느 것 하나 미더운 구석이 없다. 올 1분기 유가증권 시장의 상장사 실적을 보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7%, 영업이익은 23.5% 증가했다. 수치만 보면 선전한 듯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작년 경기둔화에 따른 기저효과와 글로벌 관세 발표 전 급증한 선주문의 영향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에 환율상승도 한몫했다. 2분기 실적을 낙관할 수 없다는 전망이 괜한 게 아니다.
항목별로 쪼개 보면 이같은 현상을 알 수 있다. 흑자기업수가 작년 496개사에서 올애 478개사로 줄었고, 적자 기업은 140개사에서 158개사로 늘었다. 무엇보다 국내 중소 기술 기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코스닥의 경우, 영업이익은 2.4%, 순이익은 무려 26.8%가 줄었다.
경기로 넘어가면 더 할 말이 없다. 국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2%로 3분기 만에 또 한 번 역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2.0%에서 1.0%로 절반이나 깎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올해 국내 경제가 2.0% 성장할 거란 전망에서 1.5%로 낮춰 잡았다. 더군다나 지난 주 발표된 미국 경제성장률마저 -0.5%로 후퇴한 것으로 나타나 글로벌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반면 증시로는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7조~8조원 수준이던 코스피 거래대금은 지난 주말 14조원까지 늘었다. 코스피가 3100선을 돌파했던 24일에는 19조원대에 이르기도 했다.
허나 이는 빚잔치의 허영이 만들어 낸 결과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주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0조원을 돌파, 불과 한 달만에 2조원이 넘게 늘었다. 외국인 귀환으로 불이 붙은 간만의 상승장에 올라타려는 개미들이 빚투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국내 증시는 올해도 또 한 번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이 좌절되는 수모를 맛봤다. 이번에는 편입 후보군인 관찰대상국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국내 증시 시스템에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다보니 3100선까지 오른 증시는 이후 조정국면에 들어간 모습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상법 개정안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주가반등을 이끌었지만, 결국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다 보니 추가 상승이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그간 상승장을 주도한 종목들을 봐도, 시장 분위기가 호락하지 않음이 감지된다. 상법 개정안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지주사와 글로벌 정세 불안이 호재인 방산주, 정책 수혜주인 반도체와 조선주, 아직 밑그림만 그려진 스테이블코인 관련 테마주, 여기에 주가급등이 반가운 증권주 등, 일부에 국한돼 있다.
경제의 거울이라 할 수 있는 증시가 오른다는 건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반짝 상승에 고무돼 미래를 낙관하기에는 작금의 현실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손희동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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