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 “금융시스템, 美·中 갈등에 균열 우려… 불확실성 시대 진입”
국제결제은행 연례 보고서 공개… 보호무역주의 및 무역 분절화 경고
국제결제은행(BIS)이 미·중 무역갈등과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하면서 세계 금융시스템의 근본적 균열이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9일(현지시각)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BIS는 이날 발표한 연례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중대한 전환점’에 와 있다”며 “공공부문과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BIS는 주요 중앙은행들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로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린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BIS 사무총장은 “미국 주도의 무역전쟁과 각국의 정책 변화가 오랫동안 유지돼온 경제 질서를 흔들고 있다”며 “세계 경제가 한층 더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9일로 예고한 추가 관세 부과 시한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나왔다. 미·중 갈등과 각종 지정학적 충돌이 이어진 가운데 나온 것이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멍청하다”고 비난한 것과 관련해서는 “어느 시점에서는 정부와 중앙은행 간 마찰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며 “이것은 거의 설계된 관계”라고 언급했다.
BIS의 이번 연례 보고서는 주요 중앙은행 총재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만큼 중앙은행계의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보호무역주의와 무역 분절화가 수십 년에 걸친 경제·생산성 성장 둔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인구 고령화, 기후변화,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세계 경제가 충격에 점점 덜 견디는 체질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들의 물가 인식에도 지속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 결과도 보고서에 담겼다. 급증하는 공공부채는 금리 변동에 대한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키우고, 정부의 위기 대응 재정 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카르스텐스 사무총장은 “이 같은 부채 증가 추세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며 “국방비 지출 확대는 부채를 더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BIS의 주요 경제고문인 신현송 BIS 경제보좌관은 달러 가치 급락에 주목했다. 달러는 올해 들어 10% 하락하며 1970년대 자유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상반기 최대 하락폭을 기록할 전망이다. 신 보좌관은 “일부에서 제기하는 ‘미국 자산 이탈’ 신호는 발견되지 않았다”면서도 “국부펀드나 중앙은행의 움직임은 더디기 때문에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국채 등 달러 자산을 보유한 비미국 투자자들의 환헤지 거래가 최근 달러 약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놨다. 그는 “아직까지 우려할 만한 신호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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