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 “원화 스테이블코인, 비은행권 발행 안돼”

“자본유출, 자본규제 회피 가능성”

2025-07-02     원재연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무분별한 도입에 대해 또 한 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자본유출 및 자본규제 훼손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 한국은행

1일(현지시각) 이 총재는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연례 통화정책 포럼에 참석해 “규제되지 않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의 환전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자본유출 및 자본규제 회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하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다”며 “이는 자본 이탈을 유발하고 한국의 자본유출입 규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민간에 허용해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 이 총재는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면서 핀테크 등이 정부에 비은행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민간이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요청이 많다”면서도 “현재 우리나라의 규제 환경 등을 고려하면 비은행 기관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현재 시중은행과 함께 허가형 네트워크 내에서 예금토큰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공공 블록체인에서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구조적으로 다른 사안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이는 한국은행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으로, 관계 부처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 기술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신기술로 불규칙한 거래를 식별하고 고객 확인을 준수하며 이상 거래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블록체인 기술이 자금세탁 방지, 불법거래 식별 등에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것이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통화정책과 금융시스템에 미칠 구조적 영향도 짚었다. 그는 “내로우뱅킹(대출 없이 지급기능만 수행하는 제한된 은행) 문제도 있다”며 “협소은행, 통화정책 영향 등 구조적 이슈가 동반되기 때문에 정부와 제도적 해결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문제는 한국은행의 권한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정부 당국과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필요할 경우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체를 반대하진 않겠지만, 실제 발행이 이뤄질 경우에는 은행권 등 규제와 감독이 가능한 주체를 통해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사용성과 안정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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