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생명, 공정위 지적 불공정 약관 늑장 손질
공정위 지적에 수익증권저축약관 외 4개 시정… 오는 28일부터 개정
미래에셋생명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적받았던 일부 약관을 손봤다. 공정위가 소비자에게 일부 불리하다고 판단한 내용을 시정한 것인데, 시정 요청을 받은 지 6개월이나 지나서야 움직인 것이어서 늑장 대응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생명은 최근 방문판매 및 비대면으로 판매한 계약에 소송이 발생할 경우 고객에게 불리한 재판관할 조항을 담은 약관을 시정했다. 수익증권저축 상품을 비롯해 ▲ 장기집합투자증권저축 ▲해외주식투자전용집합투자증권 ▲재산형성저축 ▲연금저축계좌 등 주로 투자 자산 관련 설정과 관련된 내용이다.
기존 약관에는 ‘회사와 가입자가 소송의 필요가 생긴 경우 관할법원은 민사소송법이 정한 바에 따른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후 ‘비대면 방식을 통한 금융상품 계약 관련 소는 제소 당시 고객 주소를, 주소가 없는 경우에는 거소를 관할하는 지방법원의 전속관할로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미래에셋생명은 28일부터 개정된 약관을 적용할 방침이다.
기존에는 관할 법원이 따로 명시돼 있지 않아 보험사가 주장하는 ‘본사 소재지 관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민사소송법상 관할 법원은 보통 피고(금융사) 주소지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지방 거주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면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고령자, 지방 거주자 등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에게는 이는 소송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공정위는 이를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위축시키는 불공정 약관으로 판단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금융투자 약관을 전수 심사한 결과에 의하면, 총 291건의 불공정 약관 중 269건이 ‘소송 관할’ 조항이었다. 전체 적발 건수의 92%에 달하는 숫자다.
공정위 관계자는 “고객에게 불리한 관할합의 조항을 약관에 규정하는 것은 제소 및 응소에 큰 불편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는 소송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다”며 “2023년 7월 개정된 법에서 금융상품 비대면 계약과 관련된 소의 전속관할을 규정하고 있어 변경된 법령의 내용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해당 내용을 공정위로부터 전달받은 금융투자협회는 이를 회원사에 1월초 일괄 고지했다. 이를 통보받은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한화증권 등은 2월초 해당 약관 내용을 수정했다. 미래에셋생명은 통보 받은 지 6개월이나 지나서야 개정에 나선 것이다. 보험사 중 공정위로부터 해당 약관 개정 시정요구를 받은 곳은 미래에셋생명이 유일하다.
공정위 시정요청 명령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66조의2를 근거로 한다. 해당 조항은 비대면 계약의 경우 소비자 주소지를 관할 법원으로 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23년 7월 신설됐지만, 미래에셋생명은 그동안 이를 명시적으로 약관에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미래에셋생명 관계자는 “보험사 중 펀드를 판매하는 회사가 몇 개 없어 타 보험사는 해당 사항이 없는걸로 안다”며 “현재 펀드를 신규로 판매하지는 않고 있어 잔고가 남아있는 고객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으로 본점에서 해지나 추납 등의 업무는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사가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지 않더라도, 금융당국이 행정 처분에 그치는 등 처벌 규정이 미약해 해당 사안이 지속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관련 법 개정에도 금융사가 즉시 약관 수정을 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 권리 침해 소지가 있다고 본다”며 “회사가 관련 법을 따르지 않더라도 처벌 규정이 미약해 보다 강화된 규정이 마련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