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손든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제 샌드박스로 속도낼까

입법 지연 속 실증사업 필요성 제기

2025-07-11     원재연 기자

정부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혁신금융서비스(규제 샌드박스) 지정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입법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사업의 가능성과 리스크를 점검하자는 차원에서다.  

11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와 금융당국은 은행, 핀테크, 플랫폼 기업, 가상자산사업자 등이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의 실증사업 가능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국내 일부 가상자산 거래소가 올해 3분기 내 혁신금융서비스 신청을 준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 샌드박스는 핀테크 기업 등 새로운 사업모델을 진행하는 사업주체들이 법적 미비로 사업 진전이 어려울 때 임시변통으로 규제 적용의 예외를 인정받는 제도다. 입법 지연에 따른 산업 경쟁력 저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시행령과 규칙 마련까지 최소 2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 시행은 2027년 전후로 전망된다. 

반면 선진국은 스테이블코인이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다. 유럽(EU MiCA), 미국(GENIUS Act), 홍콩 등은 이미 규제 정비나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시장을 우선 열어 발행·유통 과정의 문제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최종 입법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약진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사용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해외 발행사가 선점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서둘러야 하는 이슈"라며 "발행인가 또는 관련법 입안에 시간이 걸릴 경우 샌드박스 등의 방법을 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평가했다.

다만 업계 내부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한 상황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주권 확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준비금 관리 체계, 발행자 신뢰성, 리스크 대응 능력 등 국내 사업자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일부 기업은 발행 준비를 위해 상표권 출원에 나섰지만, 사업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은은 은행권 밖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면 준비금 관리 미비, 발행자 부도, 소비자 보호 부실로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급결제 기능이 민간에 넘어가면 통화량 관리가 어려워지고, 극단적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비은행 금융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면 민간화폐 남발로 통화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며 “규제 없이 허용하면 결국 중앙은행이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규제 샌드박스 추진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향이나 내용이 확정된 바 없다”며, 아직은 논의 단계임을 분명히 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