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천’시대, 국민연금이 해야 할 일 [줌인IT]

2025-07-16     윤승준 기자

국민연금은 주식시장에서 ‘고래’ 또는 ‘큰손’이라고 불린다.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뜻에서 붙은 별칭이다. 굴리는 운용자산만 1229조원. 이중 국내주식 비중을 얼마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증시 흥망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과는 이미 입증됐다. 작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후 외국인과 개인이 국내주식을 털고 나갈 때 국민연금이 속한 연기금은 매물을 받아내며 코스피 붕괴를 막아냈고 지수를 2600선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5월까지 순매수한 규모만 9조원이 넘는다. 

이랬던 연기금이 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14일 연기금은 2309억원을 순매도했다. 6월(-3881억원)까지 합치면 6000억원이 넘는다. 목표 비중도 줄이는 추세다.

국민연금은 내년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14.4%로 결정했고 2029년 말까지 13%로 낮추기로 했다. 4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12.7%로 최근 10년 평균(16.6%) 대비 4%포인트 낮다. 

국내주식 비중을 줄이려는 이유는 수익률이다. 기금수익률 관점에서 국내주식이 해외주식보다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진단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산군별 성과를 보면 1988년부터 작년까지 국내주식의 누적 수익률은 5.4%인 반면 해외주식은 15.2%로 10%포인트 더 높다.

이를 두고 정부의 ‘코스피 5000 시대’에 맞춰 국내주식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상법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을 통해 코스피가 장기 우상향할 텐데 왜 줄이냐는 지적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인구구조를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0년 1755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서서히 줄어들 전망이다. 가입자보다 수급자가 늘어나는 시기다. 수급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려면 자산 매각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부터 팔아야 할까. 국내주식 비중을 크게 늘렸다면 포트폴리오 균형상 국내주식이 대상이 될 것이다. 갑자기 매물을 쏟아내면 국내 주식시장이 받는 충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연금개혁 방안에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주식 비중이 줄어들더라도 금액 자체는 줄지 않는다. 정부가 4월 ‘2025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내놓은 연금개혁안(보험료율 13%, 기금수익률 1%포인트 인상 적용)에 따르면 최대 기금적립 규모는 1882조원(연금개혁 전)에서 3600조원(연금개혁 후)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3600조원에서 내년 국내주식 목표 비중인 14.4%만 따져도 518조원이다. 이는 4월 말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적립액(156조원)보다 3.5배 가까이 많다. 보험료율을 주요국 수준으로 더 올린다면 국내주식 적립액은 더 늘어나게 된다.

금액보다 중요한 건 투자의 질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의 상장사 대상 의결권 반대 행사 비중은 13.0%로 전년 13.8%보다 소폭 낮아졌다. 2022년 15.3%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연기금과 기관투자자 등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때 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주가치 제고, 경영 효율성 증대 등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과 일본 공적연금(GPIF) 등 주요국 연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저축에서 투자로 바뀌는 시대다. 연금 고갈 등의 이슈로 공적연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주식 투자 등으로 개인 자산을 축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들의 투자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하는 동시에 국민의 노후 자금 안전판으로써도 충실해야 한다.  

국내주식 비중을 무턱대고 올리는 건 향후 오버행(잠재적 매물) 문제로 어려울 수 있겠다. 하지만 국민연금같은 거대 자본이 지배구조 개선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게다.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적극 행동하는 ‘질적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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