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지각변동… 미래에셋·삼성證, 은행 제치고 약진
증권사 DC·IRP 적립금 6개월간 17% 성장 미래에셋證 4위→3위, 삼성證 8위→7위 올라
퇴직연금 시장을 두고 금융사 간 경쟁이 업종을 넘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이 상위권을 싹쓸이하던 것도 잠시, 대형 증권사들이 높은 수익률을 미끼로 시중은행을 하나 둘 제치고 주요 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리는 모습이다.
18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증권사 14곳의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적립금은 총 68조8649억원으로 지난해 말 59조857억원 대비 16.6% 늘어났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 12곳의 적립금이 132조4184억원에서 142조5510억원으로 7.7%, 보험사 16곳이 21조813억원에서 22조464억원으로 4.6% 늘어난 것과 비교해 증가 폭이 더 컸다.
은행을 추월한 증권사도 나왔다. 미래에셋증권은 작년 말 적립금이 22조8887억원으로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에 이어 4위였으나 상반기 26조3092억원으로 6개월 새 14.9% 늘면서 하나은행(25조8399억원)을 제치고 3위에 올라섰다. 부문별로 IRP가 18.2%(2조94억원), DC형이 11.8%(1조4111억원) 늘어났다.
삼성증권도 순위가 한 단계 껑충 뛰었다. 작년 말 삼성증권의 DC형 및 IRP 적립금은 11조2568억원으로 8위였으나 상반기 13조1478억원으로 16.8% 커지며 7위 농협은행(12조6132억원)을 넘어섰다. IRP가 18.3%(1조1507억원), DC형이 14.9%(7403억원) 급증한 게 주효했다.
금융사 DC형 및 IRP 적립금 순위를 보면 ▲국민은행 32조617억원 ▲신한은행 31조2520억원 ▲미래에셋증권 26조3092억원 ▲하나은행 25조8399억원 ▲우리은행 17조5994억원 ▲기업은행 16조9683억원 ▲삼성증권 13조1478억원 ▲농협은행 12조6132억원 ▲삼성생명 10조9614억원 ▲한국투자증권 10조2151억원 등의 순이다.
퇴직연금은 DC형과 IRP 외에 확정급여형(DB)을 포함,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 DB형의 경우, 퇴직 시 받게 될 퇴직금을 사전에 정해 놓고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해 개인 투자자의 운신의 여지가 적다.
반면 DC형은 회사가 지급한 퇴직금을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수익 지향적인 상품이다. 또 IRP는 퇴직금을 받아 넣거나 자발적으로 추가 납입해 스스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자기주도형 상품이다. 이에 DC형과 IRP로 자금이 유입됐다는 것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데 있어 개인 투자자의 적극적 움직임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증권사가 강세를 보인 것은 높은 수익률을 기반으로 퇴직연금 실물이전 자금을 유입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운용 중인 퇴직연금 상품을 매도 없이 그대로 다른 금융사 DC·IRP 계좌로 각각 이전할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시행했는데 타 업권 대비 수익률이 높은 증권사로 퇴직연금이 이전했다는 평가다. 지난해(당해 누적) 증권사의 DC형 평균 수익률(원리금 보장·비보장 합산 평균)은 6.5%, IRP는 6.6%로 금융권에서 가장 높았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DB형 퇴직연금이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 DB형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 중 적립률이 100%에 도달한 곳이 늘어나고 퇴직연금을 도입하려는 중소기업들이 비교적 부담이 적은 DC형을 선호해서다.
6월 말 금융권 DB형 퇴직연금 적립금은 214조6062억원에서 212조1661억원으로 1.1% 줄어든 반면 DC형 적립금은 13조8877억원에서 120조1866억원으로 5.5%, IRP는 98조6977억원에서 113조2857억원으로 14.8%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퇴직연금 유치 경쟁은 하반기에도 치열할 전망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에 이어 정부가 DC형과 IRP 간 실물이전 제도 시행 논의에 나서면서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는 DC 계좌를 타사 DC로, IRP 계좌를 타사 IRP로, DC 계좌로 자사 IRP 이전하는 경우에만 실물이전이 가능했으나 새 제도 시행 시엔 DC 계좌에서 타사 IRP로도 실물이전이 가능할 전망이다. DC형 및 IRP에 높은 경쟁력을 갖춘 증권사로의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지속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이 강점을 갖춘 DB의 성장 둔화세도 변수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DB 적립금은 1.8배 커지는 데 반해 DC와 IRP 적립금은 각각 2.6배, 3.6배 커질 전망이다.
신승환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투자자 관점에서 볼 때 ETF 등 본인이 원하는 투자 상품에 직접 투자하고 싶은 수요가 높은데 증권사의 플랫폼 경쟁력이 은행이나 보험사보다 훨씬 뛰어나다”며 “증권사로 퇴직연금을 예치하는 추세가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석진 한국투자신탁운용 연금컨설팅부장도 “금리하락으로 인해 보다 적극적인 퇴직연금 투자자가 증가하고 고연령대 이직자와 은퇴자 비중이 확대되면서 DC형, IRP 시장이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에 따라 증권사 선호 현상은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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