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질주 시대, 애플이 사라졌다 [줌인IT]

2025-07-18     권용만 기자

오늘날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변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그 어느 변화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술과 사람을 잇는 최전선에 있는 ‘디바이스’도 예외는 아니다. PC와 스마트폰 모두 ‘AI’가 변화의 핵심이 됐고, 최신 AI 기술을 어떻게 매끄럽게 사용자 경험에 통합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됐다. 이에 디바이스와 플랫폼이 긴밀히 결합돼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함에 있어 모두가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력질주’ 하고 있다.

시작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생성형 AI 초반 ‘오픈AI’와의 협력으로 최신 GPT 모델을 ‘코파일럿’ 서비스로 제공하고,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폼과 서비스에 모두 긴밀히 통합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디바이스 차원에서도 윈도에 코파일럿을 통합했고, ‘코파일럿+ PC’로 AI 시대를 위한 차별화를 했다. 이제 마이크로소프트는 대외적으로도 회사의 핵심이 윈도와 오피스가 아니라, 클라우드와 AI라고 공언할 정도다.

출발에서 한 발 늦은 모양새였던 구글도 최근 변화 속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최신 제미나이 모델의 성능은 이제 업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고, 구글의 서비스들과도 긴밀하게 통합됐다. 전 세계의 모바일 플랫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안드로이드와도 잘 통합돼 있다. 삼성전자의 최신 갤럭시 스마트폰도 전략적으로 구글 제미나이와의 통합을 강화하며 ‘AI 디바이스’로의 경쟁력을 높인 모습이다.

하지만 애플은 이러한 주위의 모습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여전히 ‘시리’는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에플 인텔리전스’는 이미 예정된 시기가 지났음에도 미완성이다. 최신 iOS의 AI 기능 중 가장 도움되는 변화는 ‘GPT 연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애플 개발자 포럼(WWDC)’에서도 애플 인텔리전스의 비중은 낮았다. 얼마 전에는 애플 인텔리전스 기능에 대한 허위 광고 혐의로 미국에서 집단 소송이 제기됐을 정도다.

누군가는 이런 애플의 움직임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겠다. 역사적으로 보면 애플은 ‘혁신가’보다는, 시대에 맞는 기술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형태로 포장해 내놓는 것에 장점을 가진 회사였다. 하지만 애플이 적절한 시기를 찾고 있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여유롭지만은 않아 보인다. 경쟁자들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고, 애플 주변에서는 경영진 교체설이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차기 CEO로 꼽히던 제프 윌리엄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가 물러났는데, 현재의 AI 경쟁 상황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애플의 AI 전략이 단기간 내에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어려워 보인다. 당장 실리콘밸리를 달구고 있는 인재 전쟁에서도 애플은 인재를 ‘뺏기는’ 쪽이다. 최근에는 애플의 거대언어모델 개발을 이끌어온 루오밍 팡 수석 엔지니어가 애플을 떠나 메타로 이동했다. AI 시대에 경쟁사들이 과감한 협력이나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던 때 폐쇄적인 자체 모델 개발을 바닥부터 고집했던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애플 내부에서도 높은 역량을 갖춘 외부 기업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지금까지 애플의 수십 년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금의 이미지처럼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찌 보면 IT 업계 역사에도 손꼽힐 만한 큰 파고를 넘어온 결과가 오늘날의 애플이다. 하지만 이전의 파고를 넘을 때는 스티브 잡스라는 영웅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그렇지만 더 머뭇거리다가는 손쓸 도리 없이 다시금 쇠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고,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할 때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낫다.

권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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