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AI 모델 확산…“글로벌 경쟁 가능한 독자 기술 필요”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주요 국가들이 ‘AI 주권’을 강조하며 자체 인공지능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버린 AI(Sovereign AI)’로 불리는 이 개념은 미국·중국산 AI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기술로 만든 인공지능을 직접 개발·운영하겠다는 전략이다. 우리나라 주요 ICT 기업도 거대언어모델(LLM)을 직접 개발하는 내재화 전략을 통해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LG AI연구원,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SK텔레콤, KT 등 주요 ICT 기업이 모두 자체 AI 모델 개발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사업에도 이들 기업은 참여 중이다.
기업 주도 ‘소버린 AI’…내재화·오픈소스 병행
LG AI연구원은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임명된 배경훈 장관이 원장으로 재직했던 곳이다. LG는 최근 차세대 하이브리드 AI 모델 ‘엑사원 4.0’을 공개하고, 이를 글로벌 오픈소스 플랫폼 ‘허깅페이스’에 학술용으로 공개했다. 엑사원 4.0은 전문가용(32B)과 모바일 최적화 모델(1.2B)로 구성됐다.
네이버는 일찍이 ‘소버린 AI’를 내세우며 자체 LLM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해왔다. 네이버는 자국 언어·문화에 특화된 AI가 가능하다는 점을 앞세워 B2B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경량형 모델 3종은 이미 오픈소스로 제공 중이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네이버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을 지내기도 했다.
게임사 가운데는 엔씨소프트가 유일하게 AI 자회사(NC AI)를 통해 자체 LLM ‘바르코’를 개발했다. 최신 버전인 ‘바르코 비전 2.0’도 오픈소스로 공개됐다.
통신사들도 AI 내재화에 적극이다. SK텔레콤은 최근 오픈소스 모델 ‘큐원(Qwen) 2.5’에 한국어 데이터를 학습시킨 자체 모델 ‘에이닷엑스 4.0(A.X 4.0)’을 공개했다. 완전한 독자 모델은 아니지만, 오픈소스를 활용한 하이브리드 내재화 전략이다.
KT는 자체 모델 ‘믿:음 2.0’을 운영하면서도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GPT 계열 모델도 활용한다.
카카오 역시 자체 모델 ‘카나나(Kanana)’와 함께 오픈AI GPT 모델을 조합하는 ‘AI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취하고 있다. 서비스 상황에 따라 최적의 AI를 조합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실적 자원 한계 속에서 소버린 AI를 구현하는 방안으로 주목받는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추진하는 정부
정부 역시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공공과 산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독자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위해 한국형 데이터셋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 정부는 AI 기술 주권 강화를 핵심 기조로 삼고 있다. 내각 구성에서도 네이버, LG 등 ICT 업계 출신 인사를 전면에 배치했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전 네이버클라우드 AI센터장), 배경훈 장관(전 LG AI연구원 원장), 한성숙 중기부 장관 후보자(전 네이버 대표), 최휘영 문체부 장관(네이버·놀유니버스 출신) 등이 대표적이다.
배경훈 장관은 취임 직후 “한국에서만 쓸 수 있는 모델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 가능한 수준의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의 ‘소버린 AI’ 전략이 폐쇄적 ‘쇄국형 모델’이 아닌, 개방성과 경쟁력을 겸비한 방향임을 시사한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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