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 없는 K팝 강국… “있는 시설이라도 활용해야”

2025-07-22     변인호 기자

“5만석짜리 공연장, 다음 생에 태어나도 완공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있는 시설을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겁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대중음악 공연산업 발전을 위한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이종현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회장은 2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대중음악 공연산업 발전을 위한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수도권과 지방에 이미 스타디움이나 체육시설은 충분한데, 정작 공연에는 못 쓰고 있는 현실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지자체들이 인기 아티스트 위주로만 공연장을 대관하는 경향이 있다”며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위한 장소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공연장 부족, 지자체의 비협조, 제도 미비 등이 공연산업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최윤순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이사는 “서울 내 대형 공연장은 한정돼 있어 BTS, 블랙핑크조차 임시 야외 공연장을 전전한다”며 “도쿄에는 1만석 이상 공연장이 10곳 이상, 싱가포르에는 5만5000석 규모 국립 스타디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종현 회장은 “전국을 돌며 매년 수만 명씩 동원하는 공연을 하는 가수는 싸이뿐인데도 대관 자체가 어렵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나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지자체가 나서서 공연을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막상 대관을 못 해 공연하지 못하는 지역도 많다”고 덧붙였다.

일본 사례도 언급됐다. 그는 “일본도 2000년대 전까진 공연 시장이 크지 않았지만, 지역 출신 아티스트들이 대형 공연을 유치하면서 시장이 커졌다”며 “한국도 연간 체육경기 10번도 하지 않는 유휴 시설을 적극 활용하면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연장 부족은 관객 불편으로 이어진다. 좌석 수가 적다 보니 티켓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팬클럽 선예매 비중이 커 일반 관객은 표를 구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암표상이 개입하면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정가 예매는 더 어려워진다.

공연 시작 시간이 지나치게 늦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조명 연출 효과를 위해 해가 완전히 진 뒤 공연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블랙핑크는 7월 초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공연을 토요일 밤 8시, 일요일 밤 7시에 시작했다.

지방 관객이나 미성년자는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고양종합운동장 인근 대화역은 토요일 기준 밤 11시3분에 마지막 열차가 끊긴다. 3시간짜리 공연이 끝나면 막차를 놓칠 수밖에 없다.

권민주 고양특례시 문화예술과 전문위원은 “대화역 지하철과 광역버스의 막차 시간 연장을 서울시에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시행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공연 시간 조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여러 주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은 공연장 인프라 확대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적인 논의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목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장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도 공연장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공연장 확충이 중장기 로드맵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5만석 규모 공연장을 당장 짓기는 어렵지만, 관련 예산은 재정당국과 협의가 거의 마무리 단계다”라며 “대통령이 이번만큼은 예산 걱정하지 말고 추진해보자고 한 만큼 문체부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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