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함 속에 심오함 담긴 키보드의 세계 [권용만의 긱랩]
성능과 감성, 편안함과 편의성 추구까지, 일상 속에서 개성 찾는 키보드 선택
키보드는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입력장치의 ‘근본’으로 꼽힌다. 이제 거의 모든 지식근로자들이 업무 환경에 PC를 사용하면서 긴 시간동안 키보드를 사용한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키보드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컴퓨터와 사람을 연결하는 창구로써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입력 성능을 높인 광학식, 자석식 스위치 등 한 대당 수십만원에 호가하는 고가의 키보드나 감성을 추구하는 스위치, 인체공학을 강조하는 등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다.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능 키를 추가하거나, 아예 기능 키를 따로 제품화한 경우도 눈에 띈다.
사실 키보드를 USB로 연결하는 요즘 컴퓨터라면 꼭 키보드를 한 개만 써야 할 필요도 없다. 작업 목적이나 기분에 따라 날마다 ‘골라’ 쓰기도 하고, 혹은 유선과 무선에 걸쳐 키보드 몇 개를 동시에 연결해 사용할 수도 있다. 단축 키만을 가진 키보드형 ‘컨트롤러’도 주위에 갖춰 놓으면 기분 전환은 물론 작업에 편리함도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키보드도 ‘성능’ 필요한 시대, 극한 성능 추구한 게이밍 키보드
키보드는 ‘PC 게이밍’에서도 표준 입력 장치고, 게이밍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오랜 시간 성능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왔다. 가장 먼저 시작된 움직임은 ‘동시 입력’이다. 현재는 게이밍 키보드라면 모든 키를 한꺼번에 눌러도 입력 차질 없이 들어가는 것이 기본인 시대가 됐다. 다음 유행으로는 ‘기계식’ 키보드가 다시 등장했는데, 감성 뿐만 아니라 입력 과정에서 다른 방해 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계식 키보드라 하면 제법 고가였지만 지금은 큰 부담 없이도 맛볼 수 있는 제품이 됐다.
기계식 키보드는 저렴하게는 3만원 이하의 보급형 제품부터 고가형으로는 수십만원대 제품까지 넓은 가격대에서 수많은 제품들이 있다. 이러한 제품들을 차별화하는 요소는 기계적 스위치부터 기구 설계, 부가 기능까지 여러 가지 요소가 있다. 스위치 측면에서는 역사와 전통의 ‘체리(Cherry)’ 스위치와 함께 저가형으로는 중국의 ‘오테뮤(Outemu)’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기계식 이상의 정확한 입력 성능을 위해서는 입력에 광인식 방식을 사용하는 ‘광축’이나, 자성 변화 인식을 사용하는 ‘자석축’ 방식도 등장했다.
숫자로 표현되는 사양 측면에서 이미 많은 게이밍 키보드의 성능이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간 듯한 모습도 보이지만, 여전히 프로급 플레이어들에는 키보드의 성능이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특히 FPS(1인칭 슈팅) 등 컨트롤 타이밍이 중요한 경우는 프레임 단위 이상의 입력 성능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신 고성능 게이밍 키보드들은 단순히 ‘정확한 입력’을 넘어 사용자의 의도에 맞춘 입력을 제공하면서 사용자의 퍼포먼스를 높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커세어의 ‘K70 프로 텐키리스’ 키보드가 있다. 이 키보드는 커세어가 자체적으로 만든 ‘커세어 MGX 하이퍼드라이브 마그네틱 스위치’를 사용한다. 이 키보드의 ‘자석축’ 방식 스위치는 기계식 스위치가 일정 이상 눌러야 입력되는 것과 달리 키의 움직임에 따른 자성 변화를 입력에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미세한 연속적 움직임을 모두 반영해 입력하는 ‘래피드 트리거’ 기능을 활용할 수 있고, 키 입력시 반응하는 스트로크 또한 사용자 설정할 수 있다. 입력 주기도 8000Hz까지 지원해 프레임 단위를 넘어선 정확한 반응성을 갖췄다.
이러한 고가 고성능 제품들에 대한 평은 사용자들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고가의 고성능 키보드들이 제공하는 성능과 감성의 영역은 프로급 게이머들의 퍼포먼스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는 순수한 장비 성능만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용자와도 궁합이 맞아야 한다.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고성능 입력 장치를 추구하지만, 톱 플레이어들 중에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사례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고성능 입력 장치는 사용자의 상황과 취향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성이 넓은 것도 분명하다.
장시간 타이핑 사용자를 위한 특별한 취향들
업무와 여가 양 쪽에서 PC를 쓰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키보드의 ‘감성적’ 측면 또한 중요해졌다. 키보드 시장의 감성적 측면은 크게 ‘즐거움’과 ‘편안함’으로 나뉘어 각자의 길을 개척하는 모양새다. 이 중 ‘즐거움’ 측면은 기능 뿐만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는 키감을 만드는 다양한 ‘스위치’들의 등장과 함께, 케이스 설계에서의 디자인 뿐만 아니라 방음, 방진 설계 등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노리는 모습이다.
예전에는 키보드 제품을 구입한 대로 써야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미 저가형 기계식 키보드들도 개별 키 스위치를 직접 교체할 수 있는 ‘핫스왑’ 방식이 널리 퍼져 있는 만큼, 마음에 다는 본체와 스위치를 임의로 조합하는 것과 함께, 여러 스위치의 혼합 사용도 가능하다. 이 핫스왑 방식 키보드에서 쓸 수 있는 스위치들도 제법 다양해졌다. 이미 중국 오테뮤의 스위치는 전통적인 클릭형 청축이나 리니어형 적축, 중간의 갈축 이외에도 더 가볍게 눌러도 동작할 수 있고 독특한 느낌을 주는 여러 종류의 축들 중 선택할 수 있다.
‘편안함’ 측면도 독특한 취향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 중 키보드의 근간인 스위치 구현 방식에서는 좀 더 편안한 방식이라면 기계 스위치가 아닌 고무 돔 형태의 접점을 사용하는 ‘멤브레인’ 방식과 노트북 PC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가위형 지지대 기반 ‘펜타그래프’ 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기술적으로 펜타그래프는 기계적 구조 구현 방법으로 접점을 만드는 방식은 멤브레인 방식 등과 함께 사용된다. 펜타그래프 방식 키보드는 대부분 키캡도 얇고 키보드 자체도 얇아서, 적은 힘으로도 쉽게 누를 수 있고 디자인도 깔끔하다.
형태 측면에서의 편안함은 ‘인체공학’ 형태로 나타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내추럴(Natural) 키보드, 인체공학 키보드 시리즈가 상징적인 이 제품군은 중앙이 솟아 있고 키가 갈라져 있는 배열이 특징이다.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로지텍, HP 이외에도 몇몇 회사들이 이러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고, 디자인도 인체공학형 뿐만 아니라 일반 키보드와의 이질감을 줄인 커브드 디자인 등도 나와 있다. 초반에 적응이 어렵지만 자세만 잘 잡으면 손목 통증 등 현대 직업병을 대부분 크게 완화시킬 수 있는 도구다.
이 ‘인체공학’ 키보드에서 주목할 만한 제품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스컬프트 이고노믹 데스크톱(Sculpt Ergonomic Desktop)’과 로지텍 ‘에르고 K860’ 같은 제품이다. 이 중 ‘스컬프트 이고노믹 데스크톱’은 편안함을 위한 정석적인 인체공학 배열에 펜타그래프 타입 키를 사용해 익숙해진다면 매우 편안한 사용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도 이 제품을 10년 이상 사용하면서 만족감이 높다. 아쉬운 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변장치 사업을 매각해 이제는 ‘인케이스(Incase)’ 브랜드가 되어 신모델을 국내에서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이러한 편안함 위주 취향의 또 다른 방향성은 노트북 키보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신 노트북 PC들은 키보드 또한 사용자를 위한 감성의 한 부분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에 맞게 미세 조정하며 이런 부분들이 각 브랜드의 팬을 만들기도 한다. 레노버의 씽크패드는 키보드 측면에서 명성이 높고, 아예 키보드 부분만 따로 빼서 제품화까지 했을 정도다. 한편, 팬들 사이에서 씽크패드 키보드는 현재의 6열 배열보다 7열 배열 시절의 감촉이 더 좋은 평가를 받지만, 6열 배열도 여전히 매력적인 느낌을 준다.
어두움 속 백라이트부터 특수 단축키까지 편의성 추구의 길
게이밍 PC에 화려한 RGB 조명이 보편화되면서 키보드에도 ‘조명’이 장착된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러한 조명은 화려한 연출 뿐만 아니라 어두운 곳에서 키보드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조명 효과로 실용성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요즘 저가형 키보드에서 제공되는 백라이트는 때로는 없느니 못한 상황도 나올 수 있어 세심한 선택이 요구된다. 사용자 정의 가능한 RGB 백라이트 수준이 아니라면 차라리 단색 백라이트가 낫고, 최근 저가형 제품에서 많이 보이는 변경 불가능한 ‘레인보우’ 타입은 피하는 게 좋다.
백라이트가 있다고 키에 조명이 모두 들어오는 것도 아닌 만큼 키에 이중사출 방식의 제조를 사용해 조명이 각 키에 투과되는지도 확인하면 좋다. 저가형 키보드에서는 백라이트가 키에 투과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는 백라이트가 오히려 방해만 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조명을 갖춘 키보드라면 키를 누를 때마다 다양한 조명 효과를 즐길 수 있어 키보드를 사용하는 동안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편의성 측면에서는 단축키와 다중 연결 기능을 갖춘 제품들을 주목할 만 하다. 이미 많은 키보드들이 단축 키로 오디오 볼륨 조절이나 윈도의 특정 기능, 프로그램 실행 등이 가능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 잘 사용하면 소소한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사용자 정의 가능한 매크로 키는 여러 단계가 필요한 단순 반복 작업을 줄일 수 있다. 커세어의 ‘K100 RGB 에어 무선’ 키보드 같은 경우 미디어와 볼륨 조절 뿐만 아니라 전용 매크로키 4개를 갖춰 디자인 등 복잡한 작업에서 활용 능률을 높여 준다.
이러한 키보드의 단축키와 매크로 관련 기능은 아예 전용 디바이스로 따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분야에서 흥미로운 디바이스로는 엘가토의 ‘스트림덱 플러스’가 있다. 이 디바이스는 터치 디스플레이와 다이얼을 갖춰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방송 제어에 특화된 것으로 잘 알려졌지만 보조 디스플레이와 매크로 기능 활용에도 효과적이다. 좀 더 단순한 제품으로는 클리커스의 한손 키보드도 있고, 와콤이나 엑스피펜(XPPen) 등의 타블렛에 사용하는 보조 컨트롤러도 이러한 기능들이 근간에 있다.
다중 연결 기능을 갖춘 키보드는 보통 유선과 무선 2.4GHz, 블루투스 연결 등을 전환할 수 있는 형태로 여러 디바이스들을 키보드 하나로 쓸 수 있어 편리하다. 최근에는 보급형부터 제법 많은 키보드들이 유, 무선 연결을 모두 지원하고 있다. 하나의 키보드를 여러 디바이스에서 쓸 때는 윈도와 맥OS, 안드로이드와 iOS 등 주요 운영체제와 입력기에서의 한영 전환 문제도 조금 복잡한데 모바일을 염두에 둔 키보드들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전용 프리셋을 제공하기도 한다.
권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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