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 법안, 또 공회전…리스크는 민간 몫 [줌인IT]

제도 미비 탓에 수억 원대 적자 떠안은 스타트업들…“버틸 체력 한계”

2025-07-24     원재연 기자

토큰증권(STO) 제도화가 또다시 미뤄졌다. 지난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 상정된 STO 관련 법안 5건은 여야 모두 “이견 없다”고 밝혔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후순위로 밀렸다. 상임위 안건이 많은 탓이라지만, 한참 전부터 ‘합의 처리’가 예고된 법안이라는 점에서 허탈감만 남긴다.

정치권은 “8월 중에는 꼭 처리하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제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에도, 올해 상반기에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지난 3월에는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려다 야당 반발로 철회됐고, 6월에도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통과가 무산됐다. 그때마다 “조율이 끝났다”는 말이 나왔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

결국 손해는 준비해온 민간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특히 문제는 스타트업들이다. 대형 금융사나 증권사는 준비를 늦출 수 있어도, 시장 선점을 노리는 작은 기업들은 발 빠르게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블록체인 연동 시스템 개발, 투자계약증권 설계, 수탁기관 연동, 인허가 자문까지 모두 매출 없이 감당해온 ‘선행 투자’다. 일부 기업은 벌써 수억 원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 A사는 STO 기반 투자 플랫폼을 개발하며 법무법인에만 자문료 2억원을 지불했다. 별도로 블록체인 연동 개발에 3억원 이상, 투자계약 구조 설계와 수탁 테스트까지 포함해 7억~8억원을 선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사업 개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처음엔 올 상반기 입법을 예상하고 인력까지 확충했는데, 지금은 감원 가능성까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현행 자본시장법 체계에서는 STO를 투자계약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한 발행·유통 기준은 존재하지 않고, 금융위의 유권해석조차 법적 구속력이 없다. 결국 미리 사업화를 시도했다가 ‘무인가 영업’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계속된다. 선제적 투자에 따른 규제 리스크까지 민간이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문제를 모르진 않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부터 STO 제도화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이재명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으로 STO 법제화를 명시했다. 하지만 국회에선 매번 “이견 없다”는 말만 남기고 책임을 미루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안건을 올려놓고도 논의하지 않는 정무위 운영 방식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도 나온다.

STO는 단순한 신산업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핵심 인프라다. 국회가 계속해서 이 이슈를 미룬다면, 제도 공백은 곧 시장 역행으로 이어진다. 인프라는 이미 구축됐다. 하지만 스타트업들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다. 이번 8월에도 국회가 또 책임을 미룬다면, 손실은 다시 민간의 몫이다.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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