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화 한다는데… 상장사 자사주 소각, 고작 ‘3%’
4~7월 코스피 상장사 30곳만 자사주 소각 공시 소각 의무화 다가오자 일부에선 소각 대신 처분
새정부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에도 불구, 아직 기업들의 참여는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상법 개정까지 남은 기간을 생각하면 예상 가능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실로 닥쳤을 때 기업들이 받을 충격이 적지 않을거란 진단이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4월 1일부터 7월 28일까지 4개월간 ‘주식소각 결정’ 공시를 낸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소속 상장사는 30곳(공시 32건, 기재정정 제외)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공시에서 소각한다고 밝힌 자사주 수는 총 5578만2105주(보통주 기준, 우선주 제외)다. 이는 3월말 기준 코스피 전체 자사주 18억356만8082주의 3.1% 수준이다.
회사별로 보면 신한지주(자사주 소각 1154만주), KB금융(877만주) 등 금융지주가 적극적이었고, 이밖에 LG유플러스(678만주), 현대차(446만주), 유니켐(420만주) 등 자사주 비중이 10%(보통주 대비) 미만인 곳의 소각 규모가 컸다. 반면 자사주 비중이 10%가 넘는 상장사(118개) 중에선 제일연마(10만주), 삼성화재(136만주), 영원무역홀딩스(14만주), 빙그레(30만주) 4곳만이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다.
기간을 1년 정도로 넓혀 보면 미래에셋증권 등 15곳이 자사주 소각을 진행했으나 나머지 103곳은 요지부동이다. 신영증권(자사주 비중 53.2%), 일성아이에스(48.8%), 조광피혁(46.6%) 등 중견기업뿐 아니라 SK(24.8%), 두산(17.9%), KCC(17.2%), HDC(16.3%), 한화생명(13.5%) 등 그룹 계열사도 마찬가지였다.
자사주 소각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법적으로 말소하는 것을 말한다. 소각 시 주당순이익(EPS)이 늘어나고 주식 희소성에 따라 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어 효율적인 주주환원책을 평가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주환원 강화를 근거로 ‘자사주 원칙적 소각 제도화’를 언급했고 이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전임 정부가 추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서도 권고 사항이긴 했으나 자사주 소각은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국회에 발의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은 총 4개다. 취득 후 소각 시점이 서로 다르나 자사주를 취득하면 반드시 소각해야 한다는 원칙은 똑같다. 이 가운데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법 시행 전 보유한 자사주도 6개월 내 소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법안 통과 시 자사주 비중이 큰 기업의 경우 소각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차라리 자사주를 팔겠다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최근 4개월간 코스피 51곳이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처분결정)’ 공시(59건)를 냈고 이들이 처분한다고 밝힌 자사주 규모는 3175만주로 작년 동기간(1535만주)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자사주 처분은 자사주를 매각해 주식을 유통시장으로 다시 불러와 주주가치 제고와 거리가 멀다.
일례로 롯데지주는 지난달 26일 ‘재무구조 개선’ 목적으로 자사주 524만5461주를 계열사 롯데물산에 매각했다. 자사주 전체 물량(3410만3937주)의 15.4%에 달하는 규모였다. 자사주 처분을 통해 롯데지주는 자사주 비중을 32.5%에서 27.5%로 5%포인트 낮췄다.
㈜LS도 자사주 비중이 15.1%로 높음에도 5월 16일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EB(교환사채) 발행 목적으로 자사주 전체 8.0%에 해당하는 자사주 38만7365주를 처분했다. 자사주 비중이 10% 이상인 SKC도 6월 말 EB 발행 목적으로 자사주 전체 물량의 65.9%인 250만주를 처분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자사주가 회사 경영에 악용되고 있어 이를 막는 수단으로 자사주 소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규식 비스타글로벌자산운용 변호사는 “회삿돈으로 산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처분하는 걸 허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면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자본시장이 투명‧공정해지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계 펀드의 선호도를 높여 그만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도 올라갈 수 있을 거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선순환의 물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 외국 투기자본 등에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으므로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자사주 전부 소각 시 경영이 어려워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증폭할 수 있다”면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하려면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황금주(중요 사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 주식) 등 경영권을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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