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168조원 시장된 코인ETF…한국선 제도 마련 '감감'

기초자산 인정·신탁 법령 정비·선물시장 구축 등 준비 필요

2025-08-01     원재연 기자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제도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제도적 기반 미비로 본격 도입 논의조차 제자리걸음이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상품 구조 설계와 내부 스터디를 통해 사전 준비를 마친 상태지만 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추진 자체가 불가능해 속만 끓이고 있다. 

1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현물 ETF에 대해 환매 시 현금 대신 실물 자산을 지급하는 ‘현물 상환(in-kind redemption)’을 공식 허용했다. 이와 함께 비트코인 옵션의 포지션 한도도 기존 대비 10배 확대했다.

SEC의 이번 조치는 제도적 명확성과 실무 효율성 측면 모두에서 ETF 시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변곡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월 첫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 이후 블랙록, 피델리티, 아크 등 11개 상품이 출시됐고, 1년 만에 168조원 규모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번 현물 상환은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어 특히 기관 투자자의 참여 유인을 더욱 높일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반면 국내 상황은 제도적 기반이 여전히 부실하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ETF 기초자산을 금융투자상품, 통화, 원자재 등으로 한정하고 있어, 가상자산은 명시돼 있지 않다.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포함시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지난 6월 발의됐지만, 상임위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ETF를 운용하려면 신탁법상 수탁 대상 자산에도 가상자산이 포함돼야 하나, 현재로선 명확한 법적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제도 정비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선적으로 선물 ETF 도입을 통해 헤지·차익거래 기반을 마련하고 점진적으로 현물 ETF로 확장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제시된다. 하지만 이 역시 선물 시장 인프라와 지정참가회사(AP), 유동성공급자(LP) 관련 제도가 병행되지 않으면 괴리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운용사들은 이미 가상자산 ETF 구조 설계와 내부 리스크 검토를 끝냈지만, 금융당국의 입장이 불분명한 상황에서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조차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실제로 일부 운용사들은 당국과 비공식 접촉 후 신청을 보류하거나 철회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산운용업계에선 제도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사가 독자적으로 상품을 추진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자본시장법 개정과 제도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발의된 개정안에는 디지털자산을 기초자산과 신탁재산 범위에 포함하고, 일정 요건을 갖춘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수탁 업무를 위탁할 수 있는 특례도 담겨 있다. 국회 내 여야 의원들이 각각 유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준비 중이지만, 통과 시기나 시행 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금융당국은 제도 도입에 앞서 국회 입법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으로, 신중 기조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ETF 도입의 실익은 제도권 금융시장 내에서 가상자산 유동성을 공식화하고, 개인 중심의 시장 구조를 기관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수탁은행, 자산운용사, 시장조성자(MM) 등 기존 금융 인프라 참여자들이 상품 운용에 개입함으로써 시장의 투명성과 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또한 해외 기관투자자의 자금 유입 통로가 넓어지고, 김치 프리미엄과 같은 시장 왜곡 현상도 완화될 수 있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도 업계 수요에 부합하는 커스터디 인가 제도 정비, 금융사의 자회사 설립 허용, 전략적 투자 규제 완화, 그리고 금융-핀테크 협력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제도 개선을 통해 고급 인프라 확보 기반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며 "금융당국 간 협의체 구축, 기능별 역할 분담, 법령 간 충돌 해소를 병행하여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일관된 규율체계를 조속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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