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평가 지표 AAII가 던지는 충격과 K-AI의 생존 전략 [윤석빈의 Thinking]
최근 공개된 ‘Artificial Analysis Intelligence Index(AAII)’는 단순한 AI 벤치마크 지표가 아니다. 이는 AI 평가 기준이 ‘지식의 양’에서 ‘사고력의 깊이’로 전환되고 있음을 선언하는 일종의 이정표다.
단순히 많은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는지가 아니라, 정보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맥락 속에서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MMLU-Pro, GPQA Diamond, AIME 등 7개 고난도 테스트로 구성된 이 지표는 AI가 복잡한 문제 상황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며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측정한다.
이제는 단순 스펙 경쟁을 넘어, ‘AI가 얼마나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가 중심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점수로 끝나지 않는다. 각국의 AI 전략, 기업의 데이터 생태계, 기술 튜닝 철학이 어떤 차이를 만들고 있는지를 AAII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고력을 중심으로 한 경쟁은 결국 AI를 둘러싼 생태계 전체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함을 시사한다. AI 사고력 경쟁의 서막이 열린 지금,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한 시험대 위에 서 있으며, 이 경쟁은 더 이상 특정 국가나 기업의 독점 영역이 아니다. 누구든 준비되어 있다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X(구 트위터)의 ‘그록(Grok) 4’가 73점으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기술적 성능의 우위가 아닌, 데이터 생태계의 독점과 피드백 루프가 만든 결과다. 그록은 실시간 소셜 미디어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학습하며, 그 안의 복잡한 밈, 풍자, 모순적 표현 등을 추론하는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사회적 맥락과 인간 심리에 대한 민감한 반응 능력을 갖춘 셈이다. AI의 성능이 모델 구조만이 아닌 ‘무엇을 어떻게 학습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GPT-4o는 엇갈린 결과를 냈다. 유료 버전인 GPT-4o 프로는 71점으로 그록을 바짝 추격했지만, 일반 사용자 대상인 GPT-4o는 41점에 그쳤다. 이는 ‘같은 모델이라도 목적과 운영 방식에 따라 성능이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을 던진다. 결국 AI의 진짜 경쟁력은 모델의 이름이 아니라 실제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최적화되고 유지 관리되는가에 달려 있다. 성능은 더 이상 모델이 발표된 순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사용자 환경과 피드백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중국의 무서운 성장이 더욱 눈에 띈다. 알리바바의 큐웬(Qwen)3와 딥시크의 RT 시리즈가 68~69점으로 최상위권에 안착하며 사고력 기반의 평가에서도 미국 빅테크를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데이터를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 하에 기술 내재화와 독자적 AI 철학을 함께 발전시켜 온 결과물이다. 교육, 과학기술, 산업 전반에서 AI를 기반 인프라로 통합하는 중국식 접근 방식은 그 자체로 ‘국가 단위의 AI 사고력 실험실’이라 할 만하다. 이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신만의 AI 철학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여기에 맞서 ‘신뢰성’ 중심의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클로드(Claude) 3 시리즈는 강화학습과 윤리 기반 튜닝을 통해 예측 가능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며, 의료·법률·금융 등 고신뢰 산업 진출을 겨냥하고 있다. 제미나이 플래시(Gemini Flash) 역시 경량화와 속도 중심 전략으로 특화 산업에 최적화된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성능 수치 외에도 AI를 어떻게 ‘현실에서 쓸 수 있느냐’는 관점의 경쟁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단기적인 벤치마크 성과보다 장기적인 신뢰와 실용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식 AI 전략은 결국 “책임 있는 AI”라는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격전 속에서 한국 AI도 무력하지만은 않았다. LG의 엑사원(EXAONE) 4.0은 64점, 업스테이지의 솔라 프로(Solar Pro) 2는 58점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엑사원은 산업특화 데이터를 통한 전문적 사고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고, 솔라는 한국어 문맥 이해력에서 강점을 보여주며 다국어 기반 글로벌 AI와의 차별화 포인트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엑사원은 법률, 과학, 공공행정 분야에서 실질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고도화된 응용력을 보여주고 있고, 솔라는 다층적 언어 구조를 갖는 한국어의 의미망을 정밀하게 분석해 실제 상담, 보고서 작성 등에서 높은 품질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갈 길은 멀다. 두 모델 외에는 AAII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단지 기술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벤치마크에 대한 참여 부족과 검증을 회피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구조적 한계다. 국내 테스트에 만족하고 글로벌 평가에는 소극적인 자세는 결국 K-AI를 ‘섬 안의 기술’로 머물게 한다. 진정한 기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방성과 학습의지가 필요하다. 특히 스타트업과 중견 기업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실패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K-AI 국가 전략’은 단순한 기술 개발 지원을 넘어, 성능 검증과 글로벌 경쟁을 위한 공공 인프라 조성으로 진화해야 한다. 예컨대, 국가 주도의 AI 성능 시험장(Proving Ground)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국내 AI 모델들이 국제 벤치마크에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단기성과가 아닌 중장기 R&D 생태계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AI 사고력에 특화된 평가 기준과 인증체계, 그리고 AI 교육과 인력 양성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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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빈 트러스트 커넥터 대표는 서강대 AI·SW 대학원 특임교수로 투이컨설팅 자문과 한국 경영학회 디지털 경영 공동위원장, 법무 법인 DLG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오라클과 한국 IBM 등 IT 업계 경력과 더불어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 산학협력 교수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