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주담대 이어 전세대출도 빗장… 실수요자 발동동

갭투자 대상 주택 입주 전세대출도 막혀

2025-08-06     한재희 기자

#수도권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씨(40)는 최근 자녀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전셋집을 옮기려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현재 1주택을 보유 중인 이씨는 새 전셋집 계약을 마친 뒤 시중은행에 전세자금대출을 신청했지만, 은행측으로부터 “1주택 이상 보유자의 전세대출은 한시적으로 취급이 중단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씨는 기존 주택을 매도하거나 처분할 계획이 없어 예외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고, 결국 추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계약 해지를 고민해야 했다.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이어 전세대출 문턱까지 높이며 가계대출 조이기에 본격 나선 모습이다. ‘6·27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금융당국이 올해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치를 낮춰 잡자, 은행들은 이에 맞춰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접수 제한,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 중단 등 강도 높은 조치가 시행되면서 실수요자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DALLE

6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전날(5일)부터 대출모집인을 통한 9월 중 실행 예정 주담대와 전세대출 신규 접수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보다 앞서 IBK기업은행도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와 전세대출 추가 접수를 전면 중단했고 NH농협은행 역시 9월 실행분까지 주담대·전세대출 한도가 이미 소진돼 더 이상 접수를 받지 않는다.

이는 ‘6·27 대책’에 따른 조치로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기조에 발맞춰 은행들이 자율적인 총량 관리에 나선 결과다.

해당 대책은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및 기타 규제지역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것이 골자다. 2주택 이상 보유자의 경우 주택 구입 목적의 신규 대출이 전면 중단됐고, 1주택 보유자의 신규 대출이 제한됐다. 단, 기존 주택을 6개월 이내에 처분하는 조건이 붙는 경우에는 예외가 적용된다.

또한 소유권 이전이나 선순위 채권 말소 등 특정 조건이 붙은 전세대출도 취급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신규로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입)된 주택뿐 아니라 과거 갭투자 방식으로 거래된 매물 역시 세입자의 전세대출이 거절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은행들은 자체적인 대출 관리 조치도 병행 중이다. 주담대 수요가 전세대출로 유입되지 않도록 한도를 줄이거나 접수를 제한하는 등 추가적인 조이기에 들어간 셈이다.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을 오는 10월까지 한시적으로 제한한다. 1주택 이상 보유자의 전세대출을 비롯해, 집주인이 아직 소유권 이전을 완료하지 않았거나 기존 주택에 잡힌 담보대출을 말소·감액하는 조건이 붙은 대출은 모두 중단 대상이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 조치는 기존에 일부 규제지역에 한해 적용됐으나 이번 조치를 통해 전국으로 확대됐다. 아울러 1주택 이상 보유자의 전세자금대출과 대출 이동 신청 건을 제외한 타행 대환 용도 대출도 취급이 제한된다.

4대 금융지주 건물 전경 / 조선 DB

다른 시중은행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2일부터 수도권 소재 주택에 대한 기업자금 목적 주담대 신규 접수를 중단하고, 담보인정비율(LTV)도 30%로 낮췄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중단한 ‘임대인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여전히 취급하지 않고 있다.

고강도 규제가 시행됨에 따라 실수요자들의 피해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특히 기존 담보가 많은 주택이거나, 임대인이 다주택자일 경우 전세대출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은행들은 수요자 보호 차원에서 직장 이동, 자녀 교육, 질병 치료 등의 불가피한 사유로 주거지를 이전하는 경우에는 심사를 통해 예외를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결국 해당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수요자들은 대상에서 빠지게 돼 주거 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세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는 가구가 늘고, 그에 따른 주거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7월 말 기준 가계대출 증가폭은 4조1386억원으로, 전월(6조7536억원) 대비 약 4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