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 마케팅'된 정부 가계대출 정책 [줌인IT]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책이 역설적으로 ‘대출 절판 마케팅’으로 작동하고 있다.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이는 조치가 반복되면서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 ‘학습효과’가 쌓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말 발표된 ‘6·27 대출 규제’도 마찬가지다. 대책 발표 후에도 집값이 오르면서 추가 규제 가능성이 커졌고, 시장에선 “막차를 타자”는 심리가 확산됐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바랐던 억제 효과보다 ‘단기 수요의 앞당김’이 더 크게 나타났다.
6.27 대책 이후 은행권 신용대출은 빠르게 줄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사정이 다르다. 이미 체결된 6월 계약분이 8월 말까지 집행되면서 순증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즉각적인 조치로 급증세는 눌렀지만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한 대출 수요는 꾸준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변수는 집값이다. 기대와 달리 정책의 약효는 금세 떨어졌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 다시 집값이 오르고, 전세가격 상승과 전세의 월세 전환, 월세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주거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이는 무주택 가구의 매매 수요를 자극하고 다시 주담대 수요를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흐름이 9월까지 이어진다면, 정부는 한층 강력한 규제를 꺼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출 한도를 줄이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 하향, 즉 집값 대비 빌릴 수 있는 금액을 축소하는 방식의 조치가 검토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시장이 이미 과거의 패턴을 학습했다는 점이다. ‘조이기 전에 미리 받아둔다’는 행동이 되풀이되면 대출의 증감 사이클은 더 크게 흔들리게 된다. 지난해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직전 대출을 미리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렸던 것과 같은 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이보다 더 앞선 2021년에는 대출 중단 사태도 있었다. 가계부채 급증에 은행들이 전세대출과 주담대를 줄줄이 중단하거나 한도를 대폭 축소한 것이다. 실수요자 불만이 폭발했고, 대출이 풀리자마자 수요가 몰리면서 불안정한 사이클이 반복됐다. 공급을 한꺼번에 막았다가 다시 여는 방식이 얼마나 큰 시장 왜곡을 초래하는지 보여준 사례다.
지금의 정책도 비슷한 함정에 빠졌다. 규제 강화 신호는 대출 수요를 앞당기고, 시행 직후엔 공급 경색을 불러온다. 이후 완화나 보완책이 나오면 ‘막차 심리’가 다시 작동하면서 또다시 대출이 몰린다. 정부 정책이 ‘절판 마케팅’으로 번역되는 이유다.
이런 왜곡을 막으려면 정책 설계 단계부터 시장의 행태적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 규제 예고와 시행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조정 폭을 세밀하게 나눠 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대출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세밀한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집값 안정 대책과 병행되지 않는 대출 규제는 부작용만 키운다.
단기 규제 카드의 반복이 아니라, 중장기적이고 일관된 원칙으로 예측이 가능한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지금처럼 정책이 ‘막차’와 ‘절판’으로 인식된다면 원하는 효과와 정반대의 결과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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