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방·원 열풍에 ‘붕어빵 ETF’ 속출… 운용업계 '공공의적'된 삼성·미래
"업계 1·2위 운용사가 중소형사 제품 베껴 출시"
지난 19일 상장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코리아원자력' ETF(상장지수펀드)는 거래 첫날 5% 넘게 빠지는 굴욕을 맛봤다. 21일 급반등에 성공하긴 했지만 사흘간 수익률은 마이너스 2.4%에 그친다. 같은 날 상장했던 신한자산운용의 'SOL한국원자력SMR'도 비슷한 처지다. 첫날 6.3% 급락하며 이틀 연속 빠지다 21일 반등했다.
두 상품은 모두 기존 히트 상품의 미투상품 정도로 불리는 붕어빵 ETF다. 원자력 관련 ETF로는 NH아문디자산운용이 내놓은 ‘HANARO 원자력iSelect’나 한투자산운용의 ‘ACE 원자력테마딥서치’ 등이 시장 초기 진입자로 거론된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조선·방산·원자력 테마가 주식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이와 유사한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이 속출하고 있다. 뚜렷한 차별성을 두지 않고 기존 인기에 편승해 상품을 뒤늦게 내놓다 보니 수익률도 별로인 경우가 많다. ETF 시장의 질적 성장 등을 위해 ‘베끼기 관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사 상품’ 출현은 원자력 뿐만이 아니다. 최근 핫했던 방산 분야도 마찬가지다. 업계에서 회자되는 대표적인 상품이 지난달 15일 삼성자산운용이 출시한 ‘KODEX K방산TOP10’ ETF다. 이는 한화자산운용의 ‘PLUS 방산’나 ‘TIGER K방산&우주’, ‘SOL K방산’ 등 기존 방산 ETF 상품과 비슷했다.
기존 방산 ETF 1위였던 PLUS 방산과 비교하면 구성 종목이 10개로 같았고 이 중 8개 종목이 겹쳤다. 한화오션을 넣었냐, 안 넣었냐가 그나마 차이였다. 반면 성과는 기대에 못미친다. 21일 기준 주가는 기준가격(1만원) 대비 6.1% 하락한 상태다.
비슷한 ETF 상품들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인기 테마에 편승해 수익을 나눠 먹거나 점유율을 빼앗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주로 중소형 자산운용사들이 고심해서 낸 상품을 미래에셋이나 삼성자산운용과 같은 1, 2위 대형사들이 비슷하게 내놓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물량공세를 통해 과점화 및 양극화를 초래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장을 만든다는 지적이다.
ETF 상품은 설계부터 상장까지 통상 2~3개월 소요된다. 원자력과 방산은 올 상반기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ETF 테마 중 하나였다. 5~6월까지만 해도 상승률 상위에 HANARO 원자력iSelect(해당 기간 수익률 76.7%), ACE 원자력테마딥서치(60.4%) 등이 있었고 3~4월 상승률로 보면 TIGER K방산&우주(29.5%), PLUS 방산(25.1%) 등이 좋았다. 이를 테마로 한 ETF가 최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유사 상품 출현 현상은 ETF 시장의 고질병 중 하나다. 연초 금 시세 상승에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KRX금현물’이 높은 성과를 보이자 삼성자산운용(KODEX 금액티브), 미래에셋자산운용(TIGER KRX 금현물)은 6월 금 ETF를 출시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KRX 금현물’은 한투운용과 기초지수(KRX 금현물지수)도 같았다.
ETF 상품 ‘베끼기’ 관행은 시장의 질적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특색 있고 다양성을 확보한 상품이 많이 나와야 투자자 선택지도 넓어지는데 중소형사가 발굴한 상품을 대형사가 베껴 점유율을 확대할 경우 결국 두 개 회사만 남게 될 것”이라며 “운용사마다 철학이 달라서 새로운 상품이 발굴되는 건데 이게 지속적이지 못하면 다양성을 유지할 수 없어 ETF 시장의 질적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베끼기 관행을 불공정거래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처럼 ETF도 불공정 영역으로 봐서 제한을 거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대형사에 1년에 상품 출시를 10개 이하로 제한하는 식으로 하면 대형사들이 무분별하게 베끼기 상품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ETF 상품이 지적 재산권(IP) 영역이 아니라서 베끼기 관행을 막기 힘들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슷하게 베껴서 ETF를 복제하면 특색 있는 ETF를 만들려는 유인을 떨어트려 장기적으로 ETF 시장에 부정적인 측면이 크긴 하나 ETF가 IP 영역이 아니라서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며 “대형사에서도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상품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서 상품 갯수 제한 방법은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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