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달라 하고 한국은 막는다…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거세지는 지도 압박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IT 업계가 한국의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를 무역 장벽으로 지목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보안과 국가 전략 자산 보호 차원에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구글 요청을 거듭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보안이다. 구글이 요구한 5000대 1 국가기본도의 위치 정확도는 평균 1.5m에 달한다. 이를 보안처리되지 않은 위성 영상과 결합할 경우 국내 주요 시설의 좌표가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국가기본도가 도로, 건물, 기반시설, 지형·고도 등을 표현해 도시계획, 교통관제 등에 활용되는 만큼 “명백히 고정밀 지도”라는 입장이다. 구글 측의 “고정밀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구글이 “해외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국토부는 “국외 반출만 제한될 뿐, 국내 서버를 활용하면 아무런 제약이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구글은 이미 국내에서 티맵모빌리티의 5000대 1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구글은 2007년부터 4차례에 걸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해 왔다. 8월 5일에는 크리스 터너 구글 대외협력정책 부사장이 공식 블로그를 통해 “길찾기 품질 보장을 위해 5000대 1 지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IT 업계 전반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등 단체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도록 미국 정부가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한미정상회담(현지시각 25일)을 앞두고 압박 수위가 더 높아지고 있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단위로 5000대 1 지도 데이터를 보유한 국가는 한국과 대만 두 곳뿐이다. 일부 지역만 보유한 나라를 포함해도 싱가포르,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토지리정보원은 1995년부터 2025년까지 약 6770억원을 들여 국가기본도를 구축했으며, 매년 300억원의 예산으로 유지·갱신을 이어가고 있다. 학계와 업계는 “혈세로 수십 년간 구축해온 전략 자산을 해외로 반출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준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현재 전국 수준의 고정밀 지도를 구축한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곤 대만 외에 찾기 어려울 정도다”라며 “5000대 1 지도 데이터는 구축을 위해 30년간 투입된 예산과 앞으로의 갱신 유지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소중한 국가 자원인 만큼 반출 여부에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지적했다.
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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