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피’ 갇힌 증시… 거래대금 ‘뚝’ 왜?
8월 일평균 거래대금 10.4조… 전월比 19% 급감 세제개편 실망, 불확실성 확대 등이 관망세 키워 “정책 드라이브로 상승 모멘텀 키워야”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갇히면서 관망세도 커지고 있다. 거래대금은 한 달 새 20% 급감했고 거래량은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주가 상승 모멘텀이 부재한 상황에서 세제 개편안 후퇴, 조선 등 주도주(株) 불확실성 확대 등이 투자심리를 약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 코스피 일평균 거래대금은 10조4393억원으로 집계됐다. 7월 일평균 거래대금 12조9589억원 대비 19.5% 줄어든 규모다. 올해 거래대금이 가장 컸던 6월(15조1998억원)과 비교하면 31% 넘게 줄었다. 거래량 감속 폭은 더 컸다. 8월 일평균 거래량은 3억2425만주였는데 이는 2019년 3월(3억2290만주) 이후 가장 적은 수치였다.
개인 비중이 큰 코스닥 시장도 비슷했다. 22일까지 8월 코스닥 일평균 거래대금은 5조598억원에 그쳤다. 전월(5조9059억원) 대비 14.3% 감소했고 월간 기준 올해 최소 규모였다.
코스피가 급락하지 않고 비교적 제자리걸음 중인 점을 고려하면 의아하다. 코스피는 25일 3209.86으로 장을 마치며 3100~3200선 흐름을 이어갔다. 3200선으로 8월을 시작한 코스피는 첫날 3100선으로 밀려났다가 12일 3200선을 되찾았고 19일 3100대로 다시 내려갔다.
이 같은 현상은 주가 상승 모멘텀이 부재한 상황에서 매수·매도에 적극 나서지 않는 ‘눈치 보기’ 장세, 즉 관망세가 커진 결과다. 통상 거래대금은 상승 또는 하락 추세일 때 증가하고 횡보할 때 감소하는데 현재 조정 국면에 들어가 거래대금이 줄어들었다는 해석이다.
관망세는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기대에 못 미친 결과다. 당초 시장에선 정부가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25%) 수준으로 정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보다 10%포인트 높은 35%로 정하며 실망을 안겼다.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하향한 점도 있다. 다만 모두 법 개정 영역이라서 정부 발표만으로 확정되지 않아 투자자들은 관망하는 상황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스피가 3200까지 올라간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컸는데 세제개편 등이 시장 기대와 거리가 있다 보니 상승 모멘텀을 유지하지 못하게 됐다”며 “상승기엔 투자자들이 더 활발하게 거래에 참여하고 차익 기회를 찾게 되는데 상승 모멘텀이 뚜렷하지 않아 거래대금은 축소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선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횡보장에서 거래량이 줄어드는 건 일반적인 상황”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컸었는데 최근 증권거래세 인상 등 세제개편이 투자자들에게 실망스러운 수준으로 나오면서 횡보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제개편뿐 아니라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FICC리서치부 부장은 “밸류에이션 12개월 선행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배 수준에 도달했고 2분기 실적이 호조를 보이지 못했고 미국의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또는 실망감에 따라서 좌지우지하다 보니 뚜렷한 방향성을 상실했고 이게 (관망세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상승장 주도주 조·방·원 대체할 종목 안보여"
주식시장 강세를 주도한 조선·방산·원전의 주가 향방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관망세에 힘을 보탰다. 이경수 하나증권 글로벌투자전략 부장은 “(상호관세 협정에서 맺은) 조선·원전 기업과 미국 간 협의 내용이 디테일하게 공개되지 않았는데 주가 흐름에 역행할 수 있거나 차익 실현을 할 수 있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게 관망세를 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증시 대기성 자금은 대거 쌓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1일 기준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 잔고는 99조8715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증시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6월 말 93조2121억원 대비 6조원 이상 불어났다. 머니마켓펀드(MMF) 잔액도 232조1856억원으로 6월 말 200조7689억원보다 30조원 이상 커졌다.
투자자 거래대금 확대를 위해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드라이브를 재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수 부장은 “한국의 펀더멘탈과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정책적 액션이 펀더멘털 및 리레이팅(주가 재평가)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기업들의 실적이 2분기 역성장할 만큼 좋지 않고 미국의 ‘AI 거품론’이 반영돼 시장 자체가 관망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흐름인데 그럴수록 정책적 드라이브가 친기업 쪽으로 세게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민 부장도 “뚜렷한 정책적 힘이 나와야 한다”며 “미국에서 금리 인하를 한다든가 한국에서 상법 개정, 세제 개편 등이 우호적으로 변한다면 (거래대금 확대) 방향성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세운 연구위원 역시 “집중투표제 기대감, 자사주 소각 등이 어떻게 제도화로 연결될 것인가에 따라 상승 모멘텀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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