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조 공룡된 車할부금융… 여신업계, 규제 빈틈 노려 이자장사 쏠쏠
카드·캐피탈, 車금융 대출+장기할부 점유 확대
국내 카드·캐피탈사들이 업황 부진을 돌파하기 위해 자동차 할부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본업 수익성이 악화된 카드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시달리는 캐피탈사가 나란히 자동차 금융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 ‘파이’는 5년 새 9조원 넘게 불었다. 이 과정에서 카드사들은 대출 대신 장기할부 결제를 앞세워 시장 점유를 넓히는 방식이 금융권 안팎에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자동차 할부금융을 취급하는 카드사 6곳(현대·BC카드 제외)과 캐피탈사 26곳의 자동차할부금융 취급액은 2019년 34조원에서 지난해 43조원으로 늘었다. 불과 5년 새 9조원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고금리·경기 둔화로 가계 지출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자동차는 생계·통근 등 필수재 성격이 강해 금융수요가 유지됐다는 분석이다.
당연히 벌어들인 수익도 증가했다. 이들 회사의 지난해 자동차할부금융 수익은 2조665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2조2616억원보다 약 4000억원(17.7%) 늘었다. 2019년 1조4489억원에서 매년 증가,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본업수익 악화 속 담보가 비교적 명확한 자동차 금융이 양 업권의 ‘대체 캐시카우’가 된 모습이다.
업권 경쟁이 격화하자 카드사들은 정공법(대출) 대신 ‘장기할부’라는 우회로를 통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자동차 금융이 전통적으로 캐피탈사의 대출(할부금융) 영역이었다면, 카드사들은 신용판매 방식을 활용해 장기할부 결제를 확대하는 식이다.
여신금융 관계자는 “자동차 장기할부는 신용판매로 분류돼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대출 규제를 피하면서도, 제조사로부터 가맹점수수료를 받고 장기간 할부이자까지 챙길 수 있는 구조”라며 “캐피탈사에 비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어 카드사들이 지속 확대를 꾀하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실제 카드사 할부 서비스 이용액은 지속 증가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업 카드사 8곳의 자동차 할부 서비스 이용액은 지난해 5조4485억원으로 집계됐다. 2023년 3조5041억원 대비 55.5% 급증했다.
현재 자동차 카드 할부는 기간이 최장 60개월 이상까지 가능해 사실상 ‘장기 대출’에 가깝지만 제도상 ‘신용판매’로 분류돼 DSR 등 대출 규제를 피해간다. 카드사 입장에선 제조사로부터 가맹점수수료와 할부 수수료를 지속 얻을 수 있는 구조다.
가령 소비자가 3000만원짜리 차량을 신용카드로 ‘일시불’ 결제하면, 제조사는 결제액의 약 1.9%인 약 57만원을 가맹점수수료로 카드사에 낸다. 이후 카드사는 일시불 결제를 12~60개월 ‘장기할부’로 전환한다. 겉으론 단순한 ‘할부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비용을 얹는 이중 수익 구조다. 할부 이자율도 약 4%대로 카드사들이 제공하는 오토론 이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같은 구조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대출에 준하는 상품이지만 규제망 밖에 있고, 가맹점수수료가 가격에 전가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신금융 관계자는 “자동차 구매 시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고 대출 상품을 이용했다면 자동차 제조사가 굳이 가맹점수수료를 낼 필요는 없다”며 “가맹점 수수료 전가분이 자동차 원가에 반영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앞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는 DSR 규제를 회피하고, 대출 기록에 등재되지 않아 사실상 가계부채 부담을 늘리고 있다”며 “카드사가 대출기간 이자 성격의 수수료를 수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당국도 카드사 자동차 할부를 DSR 가계대출로 포함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칫 자동차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카드사들이 자동차할부를 내주기 위해 일시적으로 특별한도를 열어주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애초에 병원비·경조사 등 불가피한 지출을 돕기 위한 장치였지만, 자동차 구매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며 제도 취지와의 괴리가 커졌다고 봐서다.
당국은 특별한도를 연 소득에 맞게 축소하는 안을 검토해 올해 초 여신협회와 개별카드사에 지도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여전히 도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용카드 특별 한도를 조정하는 안을 지속 검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