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신임 금감원장, 은행장 만나 건넨 첫 메시지는…
"은행, AI 같은 미래 산업에 자금 공급해야"
이찬진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과의 첫 공식 만남에서 ▲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 강화 ▲생산적 금융 확대 등을 중심으로 한 감독 방향 추진 방침을 밝혔다.
은행의 ‘이자장사’ 관행을 지적하며 그간 은행이 국가 경제성장에 꼭 필요한 적재적소를 선별해 한정된 금융재원을 공급하는 본연의 기능에서 다소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은행권을 향해 미래 산업과 실물경제에 자금을 흘려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찬진 원장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서 “앞으로 금융 감독·검사의 모든 업무 추진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14일 취임식 이후 이 원장의 첫 외부 공개 일정이다. 당초 한 시간가량 예정됐던 회의는 예정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현장에는 이환주 KB국민은행장을 비롯해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 김성태 IBK기업은행장 등 주요 시중은행장을 포함해 지방은행장과 인터넷전문은행장 등 20개 은행 최고경영자가 자리했다.
은행장들은 행사장에 들어서면서 간담회 내용이나 현안과 관련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첫 대면 자리인 만큼 금감원장의 정책 방향을 듣고 업권 전반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원장은 “더 이상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권익침해 사례는 없어야 한다”며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행위에는 ‘든든한 파수꾼’으로서 엄정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은행에서 개인정보 유출과 직원들의 횡령 등 있어서는 안 될 금융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은 자물쇠가 깨진 금고와 다를 바 없다”며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고 개연성이 높은 업무를 중심으로 근본적인 내부통제 강화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효용 가치가 없는 비용이 아니라 국민의 무한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투자이자 은행 영업행위의 기반”이라고 덧붙였다.
은행권의 담보·보증 위주 영업 관행을 비판하며 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은행은 리스크가 가장 낮은 담보와 보증상품 위주로 소위 ‘손쉬운 이자장사’에 치중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대내외적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점에 손쉬운 영업 관행이 지속되면 경제 주체 모두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은행이 지금이라도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의 성장 토대가 되는 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을 흘려보낼 수 있느냐가 곧 미래의 방향을 결정짓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도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코로나 피해 차주 만기연장 지원과 함께 “은행 자체적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 상능력 중심 대출 심사와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보다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대폭 강화하고 신성장 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다만 자본 규제 완화와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 시 과징금·과태료 중복 부과 문제 등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또 상생금융 실천 우수 금융회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채무조정 활성화를 위해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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