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독감 예방접종 시즌… 역대급 경쟁 예고
올해 3가 백신 공급…가격 다소 낮아져 면역증강·비강형 등 비급여 백신 경쟁↑
9월 말부터 시작되는 독감 예방접종 시즌을 앞두고 정부와 제약업계가 동시에 분주해졌다. 질병관리청이 국가예방접종(NIP) 대상자를 중심으로 무료 예방접종 계획을 확정하는 동시에, 산업계에서는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업체들이 신제품·맞춤형 백신을 앞세워 치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은 최근 오는 9월 22일부터 내년 4월 30일까지 2025~2026절기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대상은 ▲생후 6개월에서 13세 어린이 ▲임신부 ▲65세 이상 고령자다. 무료 접종은 9월 22일 2회 접종 대상 아동부터 시작해, 9월 29일 나머지 어린이와 임신부, 10월 15일부터는 75세 이상 고령자 순으로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특히 올해는 기존 4가(quadrivalent) 백신에서 3가(trivalent) 백신으로 전환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4가는 A형 2종(H1N1, H3N2)과 B형 2종(빅토리아, 야마가타)을 포함했지만, 이번 절기 백신에서는 B형 야마가타가 제외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내 예방접종전문위원회는 “최근 수년간 전 세계 인플루엔자 감시망에서 야마가타 계통이 검출되지 않았다”며 전환을 권고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 절기에 3가 백신을 도입했고, 일본·대만·영국도 이번 절기부터 전환한다.
질병청은 효과성과 안전성 면에서 4가와 차이가 없다며 감염 예방뿐 아니라 중증 및 사망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예방접종은 인플루엔자로 인한 입원과 사망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접종을 당부했다.
이에 제약업계도 분주해지고 있다. 이번 국가예방접종에 공급되는 백신 조달 단가는 9339원~9660원으로 형성됐다. 4가 백신 시절 도즈당 1만원을 넘던 가격이 9000원대로 떨어진 셈이다. 조달 물량은 2024년 1170만 도즈에서 1207만 도즈로 늘었다.
이번 조달에는 사노피, 보령바이오파마, 녹십자, SK바이오사이언스, 한국백신, 일양약품 등 6개사가 참여해 물량을 확보했다. 사노피가 225만 도즈(단가 9339원), 녹십자가 263만 도즈(9436원), SK바이오사이언스가 240만 도즈(9470원) 등으로 각각 낙찰을 받았다.
한 백신 공급사 관계자는 “공급 단가 하락은 제약사 실적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며 “NIP 조달을 확보했더라도 매출 방어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제약사들은 국가예방접종 시장 외에 ‘비급여 민간 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올해 비급여 백신 시장은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국내외 제약사들이 다양한 맞춤형 백신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65세 이상 고령자 대상 고용량 백신 경쟁이다. 사노피의 ‘에플루엘다’와 CSL시퀴러스의 ‘플루아드 쿼드’ 등의 등장이다.
2024년까지만 해도 플루아드 쿼드가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지만, 사노피가 에플루엘다를 출시하면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올해 CSL시퀴러스는 삼진제약과 손잡고 국내 영업을 강화하며 맞불을 놓았다.
삼진제약은 내과 병·의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격적 마케팅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비급여지만 고령자 환자들의 수요는 분명하다”며 “시장 점유율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또 하나의 변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비강 스프레이형 백신 ‘플루미스트’다. 2009년 국내에 도입됐으나 2014년 철수했던 이 백신이 10년 만에 다시 출시된다.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중심으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요 소아 백신이 이미 국가예방접종에 포함돼 있어 시장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처럼 국가예방접종과 민간 비급여 시장이 동시에 열리면서 환자들의 선택지는 그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무료 접종으로 기본적인 예방이 가능하며, 개별 상황에 따라 맞춤형 고용량 백신이나 비강 스프레이 백신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 혼란 가능성도 존재한다. 무료와 유료, 3가와 고용량 백신, 주사제와 비강 스프레이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어떤 백신이 더 효과적이냐’는 질문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접종자의 연령, 기저질환 유무, 면역 상태에 따라 권장 백신이 달라진다”며 “의사 상담을 통해 적합한 백신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독감 백신 시장은 단순히 질병 예방 차원을 넘어, 제약사들의 ‘생존 경쟁’ 무대가 될 전망이다. 단가 하락으로 인한 매출 압박, 비급여 시장의 확대,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기업 간 협력·경쟁이 얽히며 판도가 재편될 가능성도 크다.
한 업계 전문가는 “국가예방접종 시장은 공공적 성격이 강해 제약사 수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민간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과 영업력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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