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출범 후 자사주 소각 5배 늘었지만… 주가부양 공염불
코스피 28개사 6~8월 자사주 6.5조 소각 결정 네이버, KT&G, LG생건 등 15개사 공시 후 오히려 하락
지난달 28일 지주회사 LG가 2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발표하자 4% 이상 껑충 뛰었다. 하지만 기대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차익매물이 쏟아지며 주가는 다시 1.3% 하락, 자사주 효과는 이틀을 가지 못했다.
새 정부의 자사주 소각 확대 주문이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 출범 후 석 달간 발표된 자사주 소각 규모는 6조원이 넘었으나 주가는 제자리걸음이다. 공시 후 하루 이틀 정도 반짝 오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둔 가운데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장기적으로 기업 펀더멘털과 주가 제고에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달인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주식소각결정’ 보고서를 공시한 코스피 기업은 28개사(기재정정 제외)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1개사에서 2.5배 이상 늘어났다. 보통주 소각 27곳, 우선주 소각 1곳이었다.
소각금액도 엄청났다. 28곳이 공시한 자사주 소각예정금액은 6조5397억원(1억4315만주)으로 전년동기 1조1237억원(942만주) 대비 482.1% 늘어났다. 보통주 소각이 6조4676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코스닥 기업(30개사)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6조6914억원에 이른다. 1년 전 1조2487억원 대비 5.3배가 넘는 수준이다.
기업별로 보면 해운업체 HMM이 2조1432억원으로 소각 규모가 가장 컸다. 신한지주가 8000억원, KB금융이 6600억원, 메리츠금융지주가 5514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그다음 NAVER 3684억원, 기아 3452억원, 현대모비스 3172억원, KT&G 3000억원, LG 2500억원, 하나금융지주 2000억원 등의 순이었다.
상장사들이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건 ‘자사주 원칙적 소각’ 공약에 발맞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상장사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해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언급했고 이를 정책공약집에 담았다. 취임 후엔 자사주 소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나 7월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 5건을 발의했다.
자사주 소각은 회사가 보유 중인 자사주를 말 그대로 태워 없애는 것을 뜻한다. 전체 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이 커지고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를 유도하게 된다. 자사주 소각은 배당과 더불어 주주 가치를 높이는 대표적인 주주 환원책으로 꼽힌다.
문제는 ‘반강제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자사주 소각 취지인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사주 소각을 공시한 기업 28개사의 주가는 공시일 대비 지난달 말 기준 평균 0.54% 오르는 데 그쳤다. 15곳 하락, 12곳 상승, 1곳 보합이었다. 남양유업(-15.5%), 하나금융지주(-11.1%), 셋방(-8.8%), KB금융(-7.7%) 등 8개사는 공시일 이후 주가가 5% 이상 급락했다.
자사주 소각 공시 후 하루 이틀 오르다가 내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일례로 HMM은 지난달 14일 자사주 소각 공시를 낸 후 다음 영업일인 18일 주가가 7% 이상 올랐으나 이후 급등락을 반복하며 29일 현재 2만2100원으로 공시일 주가로 돌아왔다.
신한지주 역시 7월 25일 소각 공시 후 그날 2.7% 상승률로 마감했으나 다음 날 5% 이상 하락했고 이후 상승세를 타지 못한 채 현재 주가는 공시일 대비 8.3% 내려간 상태다. KT&G도 공시 다음 날(8월 8일) 6% 이상 올랐으나 상승세를 멈춘 채 자사주 소각 전(13만8500원)보다 못한 13만4700원으로 내려갔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자사주는 보유만 해도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되는데 반강제로 소각을 유도하다 보니 주가 하락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한 거 같다”며 “기업에 운신의 폭을 좁히고 이것저것 못하게 해선 밸류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민주당은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관련 상법 개정안은 다수 발의돼 있는데 자사주 취득 즉시 또는 최대 1년 이내 소각 의무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장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의 자사수 매입 유인을 줄여 자사주에 따른 주가 상승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인수합병(M&A) 대가 지급 등 자사주 활용도를 위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어느 기업도 자사주를 취득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회성으로 자사주 소각에 주가가 조금 오를 수 있으나 실적이 좋아져서 오른 게 아니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도돌이표를 그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스톡옵션, 인수합병 대가 지급 등 상법에서 자사주 활용도가 굉장히 높은데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면 이 유익한 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결과를 초래해 한국 경제에 엄청난 마이너스로 다가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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