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 코인 ATM도 생겼는데… 제도는 여전히 갈라파고스 [갈길 먼 K가상자산 ②]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 발의 속도내지만 정부조직개편에 금융위, 분리돼… 정책 표류 가능성 현장에선 "투자자보호에 시장 육성 뒷전"

2025-09-09     한재희 기자

이제 서울 명동과 강남, 마포 등 주요 번화가에서는 은행 ATM뿐만아니라 가상자산 자동입출금기도 찾아볼 수 있다. 비트코인과 테더(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원화로 바로 찾을 수 있고, 달러·엔화 환전이나 선불교통카드 충전까지 한 번에 해결된다. 본인 인증을 마치고 이메일로 받은 QR 코드를 찍으면 곧바로 현금이 나온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테더 환전소/IT조선

가상자산 투자자가 꾸준히 늘면서 속속 인프라도 조금씩 갖춰지고 있다. 이미 관련 산업은 현실 속에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하지만 제도는 아직이다. 조기 대선을 거치며 반짝 주목을 받는 듯했으나 투자자 보호 관련 고민만 있을 뿐, 시장 발전을 위한 논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9일 기준 국회에 계류돼 있는 가상자산(스테이블코인 포함) 관련 법안은 총 4개다. 지난 6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을 시작으로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안도걸·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다.

최근에는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준현 의원과 유동수, 이정문, 이강일 의원 등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디지털자산혁신법’을 공개했다. 

각 법안들은 발행 자격과 감독 강화를 전제로 하지만 세부 요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민 의원은 자본금 5억원을 기준으로 국내 법인이라면 발행을 허용하는 가장 낮은 진입장벽을 제시한 반면 반면 안 의원은 자본금을 50억원으로 상향하고 금융위 인가제를 도입하는 한편, 이자 지급을 전면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를 담았다.

김현정 의원의 경우 인가제와 함께 준비자산의 분리 보관, 공시 강화가 핵심이다. 김은혜 의원은 자본금 50억원과 인가제를 전제로 하지만, 이자 지급 금지 조항은 두지 않아 상대적으로 완화된 성격을 띤다.

디지털자산혁신법은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산업 전반을 제도권에 편입하기 위한 포괄 법안으로 ▲업종 정의 ▲발행 인가제 ▲준비자산 요건 ▲공시 의무 등을 망라, 국제적 규제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범위가 훨씬 넓다. 10억원 이상인 업종별 자기자본 요건도 대통령령으로 정해 영업 전후로 계속 유지하도록 했다. 

이처럼 국회 논의는 자본금 요건, 발행 자격, 이자 지급 여부, 감독 방식 등에서 안마다 결이 달라 단일한 규제 틀을 마련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도 10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정부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조직 자체가 분리를 앞두고 있어 가상자산 정책 역시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한편 지난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해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관련한 개정안은 총 13개나 된다. 결국 관련 법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용자 피해 방지에 방향이 맞춰지면서 정작 산업을 키울 제도는 걸음을 떼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나금융연구소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제도가 현실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이미 가상자산 자체가 하나의 투자트렌드로 깊숙이 자리잡은 탓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발표한 ‘2050세대 가상자산 투자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2050세대 설문 참여자의 27%는 현재 가상자산을 보유 중이며 초기엔 투자자의 11%만이 투자금 1000만원 이상으로 시작했으나 현재 누적 투자액이 1000만원 이상 투자자는 42%로 4배 증가했다. 

특히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사용자를 보면 한국 거주자로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평균 거래량 기준 글로벌 거래소 순위 5위권 내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이용자 보호에서 멈추지 않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토큰증권 같은 신사업을 뒷받침할 제도와 세제 마련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기본법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선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미 가상자산은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며 더욱 대중화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가상자산의 법적 제도화와 기존 금융권의 역할 확대를 기대하는 투자자들의 바람이 크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