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근절 될까… 10분 내 차단·기업 책임 강화
정부가 갈수록 지능화되는 보이스피싱에 ‘선전포고’를 했다. 개인 부주의로만 치부하던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 금융사와 통신사에 직접적인 배상 책임을 지운다. 신고 즉시 10분 안에 차단하는 ‘골든타임 대응체계’도 가동한다.
24시간 통합대응단·구글 협력…“2~3일 차단”에서 “10분 내”로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 대응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전면 개편키로 했다. 신고 후 차단까지 평균 2~3일 걸리던 절차를 10분 이내로 단축한다. 개별 기관이 따로 대응하던 방식도 통합 지휘체계로 바꾼다.
핵심은 9월부터 경찰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보이스피싱 통합대응단’이다. 전담 인력을 기존 43명에서 137명으로 확대해 상담·분석·차단·수사를 동시에 처리하는 원스톱 체계를 구축한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24시간 365일 즉시 대응체계를 만들겠다”며 보이스피싱 근절 의지를 밝혔다. 배경에는 급증하는 피해 규모가 있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64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 늘었다. 발생 건수도 1만2000건으로 23% 증가했다.
윤 실장은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금융기관·통신사가 함께 움직여 즉시 전화번호 차단과 계좌 지급정지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 방어도 강화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일 구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사기 방지 프로그램(EFP)을 도입하기로 했다. EFP는 악성 앱을 자동으로 차단한다. 이를 통해 약 3500만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15년 이후 출시된 단말에도 적용되고 별도 앱 설치 없이 자동 구현된다.
정부는 문자 사업자·이동통신망·단말기에 이르는 3중 방어망을 구축해 불법 스팸과 악성 앱 유입도 원천 차단한다. 이동통신 3사도 AI 기술을 앞세워 대응에 나섰다. KT는 ‘실시간 통화 기반 보이스피싱 탐지 서비스’로 탐지율 95% 이상을 목표로 한다. SK텔레콤은 AI 기반 딥보이스 탐지 기능을 도입하고, LG유플러스는 전국 1800개 매장을 ‘보안 전문 매장’으로 전환한다.
“개인 탓” 관행 끝…금융사·통신사 직접 책임
이번 대책의 가장 큰 변화는 피해를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던 관행을 없앤 점이다. 금융사와 통신사가 피해 예방과 배상에 직접 책임을 진다.
금융사는 예방 조치를 소홀히 하면 피해액 일부를 배상하도록 법제화가 추진된다. 윤 실장은 “금융회사도 피해 예방 의무를 지고, 범죄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액의 일부나 전부를 배상하도록 법제화하겠다”고 말했다.
통신사도 관리 책임이 강화된다. 보이스피싱이 반복되면 등록 취소나 영업정지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리점과 판매점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으로 계약이 즉시 해지된다. 외국인 휴대폰 개통도 강화돼 여권으로 1회선만 개통이 가능하고 안면인식 본인 확인 절차가 의무화된다.
정부는 해외 조직망 차단에도 집중한다.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5개월간 특별단속을 벌이고 400명 규모 전담팀으로 조직망 추적에 나선다. 윤 실장은 “해외 조직도 국제 공조로 끝까지 검거하겠다”며 중국·동남아 주요 국가와의 공조 강화 방침을 밝혔다. 법무부는 사기죄 법정형 상향과 범죄수익 몰수·추징을 위한 법 개정도 추진한다.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AI 시대의 보이스피싱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지만, AI를 활용한 민관 협력이 강력한 방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주연 기자
jyho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