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SBI와 우정, 동업으로… 해외서 우군 찾은 신 회장 [교보 지주전환 ③]

2025-09-17     전대현 기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일본 SBI그룹 기타오 요시타카(北尾吉孝)회장과의 우정은 업계에 꽤 널리 알려져 있다. 신 회장의 차남인 신중현 교보라이프플래닛 디지털전략실장이 경영 수업을 위해 SBI금융그룹 계열사 SBI스미신넷뱅크, SBI손해보험 등에서 조직문화를 몸소 익히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피니티컨소시업과의 풋옵션 분쟁에서 해결사 노릇을 해 준 것도 SBI그룹이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이제 단순한 친분을 넘어 회사 경영권을 논의하는 사이가 됐다.

(왼쪽부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기타오 요시타카 SBI홀딩스 회장 / 각사

 

SBI, 20년 인연이 백기사로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 2대 주주로 올라선 일본 SBI홀딩스는 교보생명의 가장 든든한 우군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3월 SBI는 오랜 기간 교보와 분쟁을 벌이던 어피니티컨소시엄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9.05%를 4341억원(주당 23만4000원)에 인수했다. 

아울러 추가 인수를 통해 교보생명 지분율을 2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단순히 수익만 좇았다면 실행하기 어려운 투자라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SBI가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한 배경에는 20년 가까운 두 총수의 인연이 자리한다는 분석이다. 신창재 회장(1953년생)과 기타오 요시타카 회장(1951년생)은 비슷한 연배다. 2007년 신 회장의 친인척이 보유하던 교보생명 지분을 SBI가 매입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우리금융 인수와 제3인터넷은행 설립 논의 등도 함께 의논했다.

두 사람은 상대 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일정을 쪼개 식사를 함께했고, 업계 동향부터 개인적 관심사까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오랜 시간 얼굴을 맞대며 쌓은 신뢰가 투자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최근 발표된 교보생명의 SBI저축은행 인수 역시 단순 거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교보는 현금 지급과 함께 지분 스왑을 병행해 단계적으로 50%+1주를 9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교보생명은 저축은행 운영 경험이 없었던 만큼 올 하반기 중 30%(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감안한 실제 의결권 지분 35.2%)의 지분을 취득하고, 26년 10월말까지 잔여지분(의결권 58.7%)을 인수할 예정이다. 교보생명이 SBI저축은행에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될 시점은 2027년으로 예상된다.

이는 SBI가 통상 진행하는 협력 방식이기도 하다. SBI홀딩스는 지난 5월 SBI스미신인터넷은행 지분 전량을 일본 대표 통신사 NTT도코모에 매각할 당시에도 유사한 제휴전략을 취했다.

당시 SBI홀딩스는 인터넷은행 지분을 팔아 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NTT도코모가 SBI홀딩스 지분을 8.15%를 보유하도록 했다. 은행 경영권은 넘기지만 증권사 등 기존 계열사와의 협업 구조를 이어가기 위함이다. 교보가 일본식 지분 협력 모델을 흡수해 돌파구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지분 팔지 않고 남은 코세어

코세어캐피탈(지분 9.79%)도 교보생명과의 인연을 지속한다. 코세어캐피탈은 JP모간의 경영참여형 PEF 운용사로 시작해 2005년부터는 독립계 PEF 운용사로 운영 중이다. 투자금 회수가 목적인 사모펀드(PEF)임에도 2007년 교보 지분을 주당 18만5000원에 약 3700억원 어치를 인수한 후 18년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교보생명 25년 반기 기준 소유지분 구조 / IT조선

당초 시장에서는 코세어캐피탈이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교보생명 주식가치가 1주당 23만4000원 수준에 거래되면서 비슷한 가격에 처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세어는 매각 대신 지분을 담보로 8600억원 대출을 일으켜 투자자 상환에 나섰다. 교보와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선택을 한 셈이다.

자금 조달 과정에는 신창재 회장이 보유한 지분이 핵심 역할을 했다. 신 회장은 지분 전량을 신한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 담보로 맡겼고 이를 기반으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이 코세어에 대출을 실행했다.

겉으로는 증권사가 대출을 집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신 회장이 자기 지분을 담보 삼아 코세어를 지원한 구조다. 최대주주가 직접 담보를 제공한 만큼 코세어와 교보생명의 연합이 끈끈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결국 신 회장이 외부 조력자를 끌어들이며 위기를 돌파한 셈이다. SBI는 10년 인연을 지분 투자와 계열사 인수로 확장하며 백기사 역할을 했고, 코세어는 지분을 팔지 않고 남아 교보 편에 섰다.

교보 지주사 전환 계획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전에는 외부 투자자 압박에 자유롭지 못했지만, 지금은 신 회장이 스스로 판을 짜고 동맹을 모으는 국면으로 바뀐 듯 하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