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관세, 日 적용 韓 오리무중… 현대차 고심 깊어져
현대차그룹, 25% 관세로 月2100억원 손실 전망 관세 부과 이후 대미 수출 뚝... 올해 1~7월 수출량 전년比 15.1%↓ 정부의 대미 투자 구체화 시급
현대자동차그룹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의 수입차 관세 인하 적용 시점이 확정되지 않으면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매달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고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월 30일 수입산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행정 절차가 한 달 넘게 지연되면서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를 부담하고 있다.
관세 적용 시점이 불투명해지자 현대차그룹은 2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도 웃지 못하는 상황이다.
회사는 2분기 실적 발표에서 관세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약 1조6000억원 줄었다고 밝혔다. 이는 매월 약 5300억원의 손실에 해당한다. 관세가 15%로 낮아질 경우 손실은 3200억원 수준으로 줄지만, 인하 시점이 늦어질수록 매달 2100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현지 생산 비중이 낮은 점도 부담이다. 현대차·기아의 2024년 미국 판매량 가운데 현지 생산분은 71만 대(42%)에 그쳤다. 반면 도요타(127만 대·55%), 혼다(102만 대·72%)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현지 생산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관세 부담이 덜하다. 한국산 완성차 물량이 절반 이상 직접 수출되는 구조 탓에 피해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우리 정부가 대미 투자 3500억달러(약 487조원)를 약속했지만, 펀드 조성이나 운영 방식, 수익 배분 등이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관세 인하 시점을 조속히 확정짓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데, 실제로 25% 관세 부과 이후 수출량은 감소세다. 4월 대미 수출액은 28억9000만달러(약 4조168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9.5% 줄었고, 5월과 6월에도 각각 27.1%, 16% 감소했다. 올해 1~7월 누적 수출액도 전년 대비 15.1% 줄어든 182억달러(약 25조2925억원)에 그쳤다.
여기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각)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15%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일본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가 관세 부담으로 가격을 올릴 경우 10%의 격차로 최대 무기였던 가격 경쟁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전략 수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고율 관세에도 현지 판매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현지 생산 확대와 하이브리드 모델 투입 등으로 리스크를 상쇄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세 영향이 본격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략 수정은 없다”며 “상황을 다각도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가격 동결로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인하 합의는 있었지만 아직 구두에 그치는 상황”이라며 “25% 관세가 장기화되면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 및 부품 현지화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 산업 규모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대미 투자 구체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관세 적용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