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입은 직원들… 내부반발에 감독업무 사실상 마비 [금융조직개편 파장 ①]
정부가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추진하면서 금융당국의 체제와 위상에도 태풍급 충격이 몰아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경우, 금융정책은 재정경제부로 이관되고, 감독업무는 금융감독원과 합쳐 금융감독위원회로 탈바꿈한다. 금감원은 금감위 출범과 함께 소비자 보호업무를 맡게 될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새롭게 탄생한다. 진통은 적지 않다.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새 로드맵을 점검해 봤다. [편집자주]
정부가 금융당국 조직개편을 공식화한 뒤 금융당국 조직 내 반발이 거세다. 금융위원회 해체와 금융감독위원회 신설,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 공공기관 지정 등 핵심 변화가 예고되면서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 내부 동요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현장의 거센 저항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업무 공백으로 이어지고, 과거 조직개편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설’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1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전날 오전 금융감독원 본원은 이른바 ‘검은 옷 시위’로 들끓었다. 직원 700여명이 나서 ‘금소원 분리 철회와 ’공공기관 지정 반대‘를 외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는 금감원 전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자유발언에 나선 한 직원은 “소비자 피해 구제 경험이 가장 많은 조직의 목소리가 이번 개편에 반영된 흔적이 없다”고 지적했고, 또 다른 직원은 “업계 CEO들과 대화하듯 우리와도 소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감원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소비자 보호가 강화되기는 커녕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며 민간조직의 공공기관 지정은 감독 독립성 훼손”이라며 “조직 분리는 국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자리 나누기식 개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부에서는 책임감 없는 임원진을 향한 불만도 쏟아졌다. 이찬진 원장은 출근길에 시위대를 마주하고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곧장 사무실로 향했고, 전날 긴급 간담회에 나섰던 이세훈 수석부원장 역시 “정부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원론적 설명만 되풀이해 불만을 키웠다. 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며 총파업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금융위원회 내부도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연쇄 간담회를 열어 직원들 챙기기에 나섰지만 저연차 직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심화하고 있다.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는 서울에 남겠지만 기능이 분화돼 재경부로 옮겨가는 직원들은 근무지(세종) 변화가 불가피하다. 서울에 남는 인원과 조직 등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직원들 사이 동요는 더욱 크게 일고 있다. 앞서 가계대출 정책 관련 대통령이 직접 금융위 업무를 칭찬한 만큼 조직 개편을 두고 존치를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더 크다는 전언이다.
금융위의 한 직원은 “업무보다는 향후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됐다”며 “개편안은 발표가 됐고 없어질 조직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금융위는 물론 금감원 등 조직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파악되면서 감독체계 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대규모 조직개편 이후 부작용과 같은 수순을 밟는 모습이다.
당시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해 금융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부처 간 권한 다툼과 책임 소재 불분명으로 시장에 혼란을 키웠다. 기획재정부는 예산과 경제정책을 틀어쥔 채 시장에 직접 개입했고, 금융위는 총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국제금융의 경우 재정부, 국내금융은 금융위, 감독은 금감원이 나눠 맡으며 컨트롤타워 부재가 드러났고, 각 부서 공무원들 역시 자리 배치와 인사 문제로 동요했다. 당시 조직 개편 6개월 만에 금융시장 ‘위기설’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감독업무의 중첩과 감독에 대한 책임, 소비자 보호가 약하다는 문제점이 지속 지적돼 왔다. 17년 전 금융감독 체계를 보완하기 위한 이 같은 조치가 결국 같은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내부 동요가 길어질 경우 금융당국은 장기간 정책 공백을 피하기 어렵다. 가계대출과 같은 굵직한 현안 외에도 정부 정책인 배드뱅크, 생산적 금융 추진과 소상공인 지원을 비롯한 금융 현안과 ELS 제재, 혁신금융 발굴, 제 4인뱅 추진 등 금융업계 전반의 업무가 사실상 멈춤 상태다.
금융위 한 직원은 “효율을 내세운 밀어붙이기식 개편이 갈등만 키우는 꼴”이라며 “정부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뤄지겠지만 그 절차와 과정에서 오점을 남기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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