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위에 시할머니"… ‘옥상옥’ 구조 뿔난 금융권 [금융조직개편 파장 ③]

2025-09-11     한재희 기자

금융당국 개편에 따라 금융사들은 이제 네 개의 상급 기관을 상대해야 한다. 재정경제부가 금융 정책을 맡고 감독과 제재는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담당한다. 그 아래 금융감독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각각 검사와 집행, 소비자 보호와 분쟁 조정의 역할을 하게 된다.

기존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이원체제에서 확대되는 것인데 금융업계에서는 ‘관치’의 그늘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각 기관별 업무 중첩은 물론 정책을 두고 엇박자가 나거나 정책 결정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려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정부 조직개편안 가운데 금융당국 개편안./조선일보DB(그래픽=양인성)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사들은 금융당국 개편안에 따라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정부와 담당 기관의 소통 창구인 대관 라인을 확대할 것인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금융당국 개편안은 금융권에 네 개의 상급 기관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전례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정부는 감독을 강화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업계에서는 ‘두 시어머니도 버거운데 이제는 두 시할머니까지 모셔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시나 업무 보고 등은 이미 ‘옥상옥’ 구조로 돼 있다”며 “금융권은 다른 업권과 다르게 상품 하나하나까지 허가를 받아야 하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검사 및 제재가 이뤄지는데,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 세분화돼 확대된다는 것은 금융사들이 대응해야 할 기관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불완전판매가 발생했을 경우, 이전에는 금감원 조사와 금융위 제재로 일단락됐지만 앞으로는 금소원 분쟁 조정, 금감원 검사, 금감위 의결, 재경부 법령 개선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제재 확정까지 시간이 길어지면서 금융사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경영 리스크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정책과 감독을 나눈다는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규제처럼 정책과 감독이 얽혀 있는 사안은 어느 쪽이 주도할지 애매해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미 과거 금감위 체제에서 재경부와 금감원 간 갈등으로 위기 대응이 늦어진 사례도 있다. 2003년 카드대란과 2004년 LG카드 구조조정 당시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가 반복됐듯 이번에도 기관 간 ‘핑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검사 권한까지 쥔다면 금감원과의 영역 다툼은 피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에 각 기관별 엇박자가 난다면 업권의 혼란은 가중된다. 지난해 가계대출 정책을 두고 금융위와 금감원의 엇박에 시장이 혼란스러웠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복현 전 금감원장이 가계대출 규제를 두고 개입을 이야기하자 김병환 위원장이 은행 자율을 강조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이보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감원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종합검사 부활 등을 두고 갈등을 빚었고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특히 제재와 관련해서는 금감원이 기업 제재 방안을 내놓으면 금융위가 이를 되돌려보내는 식으로 조율 과정이 반복되면서 기업들이 오랫동안 불확실성에 시달려야 했다.

또 금융위가 금감원의 예산과 조직을 승인·통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만큼 금융위가 금감원의 인건비 축소 등을 요구하면서 빚어진 갈등도 있다.

두 기관만으로도 충돌이 빈번했던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네 갈래로 쪼개지면 갈등의 경우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권한을 가진 기관이 동시에 움직일 경우 단일 현안을 두고도 기관별로 다른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과거처럼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키우는 ‘핑퐁 행정’이 네 기관으로 확대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편이 금융회사를 규제 아래에 두려는 ‘관치’가 아닌 산업 발전을 꾀할 수 있도록 다듬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의 규제에만 따르면 된다’는 구조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어서다. 대통령이 나서서 ‘이자장사’를 비판하면서도 규제로 묶어두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개편을 두고 관치가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면서 “금융을 한 산업으로 보고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에 맞는 흐름인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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