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줄줄이 미국행… 몸값 더 쳐주는 해외시장 [외면받는 K상장 ②]
조단위 대어급 토스, 무신사, 야놀자 나스닥 상장 검토 쿠팡 성공사례 영향 미친 듯… 韓 상장 시 기업가치 깎여
45억5000만달러.(약 6조3000억원)
2021년 3월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할 때 유치한 신규 자금이다. 직전 연도까지 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지만,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상장 첫날 시가총액 100조원으로 데뷔했다. 효과는 컸다. 2020년 국내 이커머스 점유율 13%로 3위였던 쿠팡은 투자금을 마중물 삼아 현재 점유율 37%의 이커머스 선두로 우뚝 섰다.
‘제2의 쿠팡’을 꿈꾸는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기업이 늘고 있다.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미국 나스닥 상장 초읽기에 나섰고 무신사와 야놀자도 미국행을 저울질하고 있다. 국내 증시에 입성했을 경우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인식과 창업자 경영권 방어 장치 부재 등이 ‘아메리칸드림’을 촉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25일 장외주식 거래 플랫폼 38커뮤니케이션과 증권플러스 비상장에 따르면 지난 주말 기준 비바리퍼블리카의 시가총액은 10조2719억원으로 집계됐다. 현재가 5만7750원에 주식 수(1억7786만8610주)를 곱해 산출한 값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12조2352억원)에 이어 비상장주식 중 두 번째로 기업가치가 높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시가총액 4조438억원)와 여행 플랫폼 야놀자(3조3064억원)도 시총 3조원을 넘긴 상태다.
이런 조단위급 대어들의 행선지가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시장 안팎의 진단이다. 국내 상장 작업을 중단한 비바리퍼블리카는 연초 외부감사인으로 삼일회계법인을 선정하며 나스닥 상장 실무 절차에 착수했다. 삼일회계법인은 네이버 계열사 웹툰엔터테인먼트(WBTN)의 감사인으로서 나스닥 상장을 조력한 곳이다. 토스 관계자는 “미국 상장이 결정된 건 아니고 (한국과 미국) 다 열어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무신사는 한국·미국 증시 입성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은 상태다. 무신사는 최근 국내 증권사와 해외 투자은행(IB) 10여 곳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며 상장 주관사 선정 작업을 시작했다. 야놀자는 지난해 미국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나스닥 상장 추진을 시작했고 올해엔 임직원에 자사주를 무상 지급하며 상장 채비에 나섰다. 2대 주주가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지분 24.93%)인 점도 나스닥 입성에 유리한 환경이다.
유니콘 기업이 미국 상장을 검토하는 건 국내 상장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 산출 기준인 공모가는 피어그룹(비교기업 집단)의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산출하는데 우리나라 증시는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은데다 피어그룹으로 삼을 만한 기업도 많지 않아 기업가치가 보수적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
피어그룹을 밸류에이션이 높은 해외기업으로 선정한다고 해도 금융감독원 심사가 까다로워 밸류에이션을 그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기업가치가 할인되곤 한다. 2021년 8월 상장한 게임사 크래프톤은 당초 월트디즈니, 워너뮤직 등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을 피어그룹에 포함했으나 금감원의 정정 요구 후 해당 기업을 삭제, 국내 게임업체 위주로 피어그룹을 바꿨다. 이에 공모가 희망가가 45만8000~55만7000에서 40만~49만8000원으로 급락했다.
쿠팡의 성공사례도 유니콘 기업의 미국 도전을 유도하기 충분했다. 쿠팡(CPNG)은 NYSE 상장 직전 5개년(2016~2020년) 연속 순손실(-3조6861억원)을 기록한 적자 기업이었으나 기술성과 성장성을 인정받으며 기업가치 630억달러로 평가됐다. 당시 환율 기준 71조8000억원 수준이었다. 코스피 상장사 시총과 비교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다음으로 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 비중은 60% 이상이고 한국은 1.5%에 불과해 미국 상장 시 시가총액을 10배 더 인정받을 수 있다 보니 유니콘 기업들이 미국 상장을 추진하는 것 같다”며 “창업자에 대해 의결권을 10배 더 인정해주는 등 경영권 보호 측면에서도 한국보다 미국이 유리해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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