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되면 애물단지되는 정기보험… 가입자 허탈

정기보험,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서 제외 소액 종신 확산으로 가격 메리트 희석

2025-09-19     전대현 기자

#. 40대 직장인 A씨는 5년전 자녀 양육비를 고려해 보험료가 저렴한 정기보험에 가입했다. 그러다 최근 금융당국의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종신보험에만 적용된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똑같이 사망을 보장하는 상품이지만, 종신보험 활용도가 훨씬 넓어질 것으로 기대돼서다. 최근 들어 소액 종신보험까지 잇달아 출시되자 A씨는 정기보험 메리트가 사라져 괜히 손해보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금융당국 제도 개선으로 종신보험 활용도가 넓어지자 정기보험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 DALL-E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오는 10월부터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가 시행된다. 종신보험 가입자가 10년 이상 보험료 납입을 완료하고 55세 이후 신청하면, 사망보험금의 최대 90%를 연금처럼 미리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일부 조건이 따르기는 하지만, 종신보험이 단순히 사망 보장에 그치지 않고 노후 대비 수단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하지만 종신보험의 쓰임새가 넓어지는 사이 정기보험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졌다. 정기보험은 말 그대로 일정 기간만 사망을 보장하는 상품이다. 대부분 해약환급금이 없는 순수보장형이라 종신보험 대비 보험료 부담이 낮아 생활비가 빠듯한 가정에서 그동안 합리적 대안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 제도 개선을 비롯해 10년 미만 단기납 종신보험 상품이 속속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낮은 보험료로도 종신보험 가입이 가능해지면서 정기보험만의 경쟁력이 크게 희석되고 있다.

최근 신한라이프는 ‘모아더드림 종신보험’의 최소가입금액을 1000만원대로 조정.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 5년만 보험료를 납입해도 원금 대부분을 돌려받는 구조다. 사실상 정기보험보다 낫다는 평가다.

특히 만기환급형 정기보험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추세다. 종신보험과 마찬가지로 장기간 보험료를 납입해 만기 시 원금을 돌려받는 구조임에도 사망보험금 활용 길은 막혀 있어서다. 

실제 삼성생명 만기환급형 정기보험의 경우 30대 남성 기준 월 보험료(20년납 기준)가 10만원대에 달해 가격 면에서도 정기보험과 간극이 크지 않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던 법인보험 시장에서도 정기보험 활용도는 더 낮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표이사 등을 피보험자로 가입한 뒤 보험료를 회사 비용으로 처리해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과열 경쟁 속에 편법 사례가 적발되면서 제도가 까다로워졌다. 

이에 최소한 만기환급형 정기보험만이라도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에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기보험이 본래 가진 보장 기능을 고려할 때 제도에서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기보험은 여전히 저렴한 보장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제도와 상품 트렌드가 종신보험에 쏠리면서 입지가 빠르게 좁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만기환급형처럼 구조가 종신보험과 큰 차이가 없는 상품을 제도에서 제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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