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융업계가 신뢰하는 금감원 돼야

2025-09-22     손희동 기자

"이제 금감원 말이라면 믿지도 않아요."

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의 고위 임원은 최근 몇 년간 겪은 금융감독원의 행태에 대해 이같은 소회를 피력했다.

이전 정부 이복현 금감원장은 검사 출신으로 금융업계의 군기반장을 자처했다. 금융사 CEO들을 수시로 불러 내부통제와 금융소비자 보호 등을 강조하며 금융사 내부의 온정주의적 조직문화를 질타했다. 

이복현 전 원장은 책무구조도 시행을 독려하며 경영진의 책임 확대와 이사회의 감시·견제 기능을 주요 화제로 올렸다. 금융사들은 리스크 관리에 매진하며 금감원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금감원 앞은 요즘도 온갖 민원시위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구호는 거창했지만 현장에선 이복현 원장을 윤석열 정부의 귀공자 정도로 여겼던 게 사실이다. 이전까지 금감원장은 경제·금융 관료나 학계 인사 등 경제계 원로들이 본인의 전문성을 발휘했던 자리였다. 

외환은행-론스타 헐값 매각 사건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삼성그룹 승계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수사한 스타검사의 금감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의심의 시선도 있었지만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권 실세 금감원장은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빛을 잃었다. 대표적인게 올해 초 우리금융지주 경영실태평가였다. 이복현 전 원장이 '매운맛'을 예고하며 임종룡 회장의 우리금융에 경영평가 3등급 결론을 내렸지만, 금융위원회는 "종합등급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며 보험사 인수를 승인해 줬다. 이복현 원장과 임종룡 회장 둘 중 한 명에겐 치명상일거란 업계의 베팅은 보기좋게 임 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평가다. 

우리금융 경영평가 결과는 지난 3년간 금감원 감사의 전형과도 같았다고 업계에선 얘기한다. 마치 대단한 부정행위를 척결할 것 마냥 떠들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가 나오거나 감당 가능한 선의 책임을 묻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시중은행들은 그 때마다 상생금융을 명목으로 지갑을 열었다. 

금투사의 한 고위 임원은 "회사 일도 못할정도로 이런저런 자료를 제출하라고 엄포를 놓고선, 막상 결론도 못내고 흐지부지 끝내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새 정부 출범 후 달라졌을까. 새로 취임한 이찬진 금감원장은 금융조직개편으로 내부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쳐 조직장악조차 못하고 있다. 업무는 마비됐고, 인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조차 없이 정치권의 조직개편 향방만 쳐다보고 있다. 

금융조직개편안은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고, 소비자보호처를 떼내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격상, 금융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 호언하고 있다. 하지만 후속작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조직개편은 여전히 진전이 없다. 

금감원을 바라보는 금융업 종사자들의 시선은 이전 정부와 달라진 게 없다. 감독업무 중복 기관만 늘어나면서 대관자리만 늘게 생겼다는 푸념 속에 금융업 종사자들의 금감원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손희동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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