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플랫폼 수출, 정답은 로컬화다 [황선혜의 K-컬처 인사이트]
디지털 시대의 팬덤은 이제 플랫폼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 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팬카페를 통해 자발적으로 교류하던 시기는 지났다.
팬덤은 이제 콘텐츠 소비, 굿즈 구매, 소통까지 모두 가능한 통합된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 중심에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연결하는 팬 플랫폼이 있다.
팬 플랫폼은 단순한 정보 전달의 기능을 넘어 팬덤 활동 전반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K-POP의 세계화 전략과 맞물려 더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특별한 실험장 역할을 한다. 일본은 한국을 제외하면 가장 성숙한 K-POP 시장이자 동시에 독자적인 팬덤 문화를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중심의 공연 문화, 팬클럽을 통한 체계적인 운영, 굿즈 수집과 이벤트 참여 등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팬덤 생태계는 단순히 플랫폼을 수출한다고 대응하기 어려운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K-POP 해외 매출에서 일본은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일본이 팬 플랫폼 시장에서 중요한 이유는 시장 규모 이상의 이유가 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팬덤 밀도와 오타쿠 문화라는 뿌리 깊은 팬 정체성을 지닌 곳이다. 특정 콘텐츠에 깊이 몰입하고 팬 활동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성향을 가진 셈이다. 이는 팬덤 플랫폼이 장기적인 관계를 설계하고 유지해 팬 경험의 깊이를 확장하는 데 유리한 토대를 제공한다.
일본 시장은 플랫폼이 팬덤에게 무엇을 제공하느냐보다 현지 팬 경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시장인 셈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팬덤 플랫폼은 일본 내 현지화 전략을 다르게 가져가고 있다. 위버스는 대형 IP 유치와 커머스·이벤트 통합, 디어유는 메시지 기반 정서 연결, 비스테이지는 맞춤형 설계와 현장 연동을 내세운다.
하이브 위버스컴퍼니는 팬덤 플랫폼 ‘위버스(Weverse)’는 AKB48, 요아소비(YOASOBI) 등 최정상급 일본 아티스트 IP를 플랫폼에 유치했다. 위버스는 또 단순 커머스 기능에 더해 팬클럽 운영·콘텐츠 유통·오프라인 이벤트를 통합한 구조를 갖추고 전 세계 팬을 대상으로 글로벌 배송망과 일본 내 신속한 현지 배송 시스템을 운영한다. 하이브의 위버스는 대형 IP 중심 팬 몰입도와 구매력을 결합해 고수익 모델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SM엔터테인먼트 디어유(DearU)는 2023년 일본 엠업홀딩스와 합작법인 ‘디어유 플러스’를 설립해 일본에 진출했다. 디어유는 2024년 6월 일본에 팬 메시징 서비스 ‘버블 포 재팬(bubble for JAPAN)’을 출시하고 일본 아티스트와 1대 1 메시징을 현지 팬 문화에 맞춰 최적화하고 있다. 버블 포 재팬에는 현재 20개쯤의 일본 IP가 참여하고 있다. 디어유는 일본을 위한 전용 웹사이트를 개설해 팬들의 결제 편의성을 강화했다.
비마이프렌즈의 ‘비스테이지(b.stage)’는 아티스트·브랜드별 플랫폼 최적화가 가능하다는 유연성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비마이프렌즈는 지난해 일본 법인을 설립한 뒤 NMB48, 배우 나카가와 타이시 등 현지 인기 아티스트 IP와 협업을 시작했다. 비마이프렌즈는 최근 역수출도 진행하고 있다. 비마이브렌즈는 최근 일본의 최정상 아이돌로 꼽히는 ‘스노우맨(Snow Man)’ 팬 커뮤니티를 오픈하고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한국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다. 글로벌 진출을 고려하는 일본 IP를 글로벌 팬덤과 연결하는 셈이다.
플랫폼 간 경쟁은 기능의 다양성보다 얼마나 섬세하게 팬 경험을 설계했는지에 달렸다. 문화 산업 생태계 중심에 선 팬 플랫폼은 일본 시장에서 생태계를 새롭게 조정하는 최전선 역할을 한다. 팬 플랫폼이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콘텐츠의 소비 흐름을 바꾸며 팬 경험의 기준도 다시 세운다. 앞으로의 시장 흐름을 주도할 팬 플랫폼은 로컬 팬덤의 맥락을 깊이 읽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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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혜 교수는 일본 조사이(城西)국제대학 미디어학부 및 대학원 비즈니스디자인연구과에서 콘텐츠 비즈니스 연구 및 실무 양측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히토츠바시(一橋)대학에서 사회학 석사를,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학에서 미디어디자인학 박사를 마쳤다. 학문 연구를 시작하기 전인 2005년에는 소니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즈에서 한일 콘텐츠 비즈니스 전반을 담당했으며 2018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 비즈니스 센터장으로 취임해 한일 협력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