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늘리라는데… 시중은행, 리스크 관리 진땀

정부 '생산적 금융전환' 요구 기업금융 연체율 상승세

2025-09-25     한재희 기자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전환’ 정책이 공개되면서 은행들이 대출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다. 가계대출은 억제하는 대신 기업대출 확대로 중심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집값과 직결된 가계대출보다 경기 회복을 위한 기업 지원에 중점을 두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조치다.

하지만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진다며 볼멘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위험가중치(RW)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5대 금융지주 계열 은행 / 뉴스1

25일 한국은행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은행 기업자금대출 잔액은 지난해 2분기 1383조3408억원에서 올해 2분기 1414조2627억원으로 2.2% 가량 증가했다. 가계대출 규제로 자금이 중소기업대출 등 기업대출로 이동한 결과다. 

향후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 대전환’을 강조하며 자본규제 개선방향에 따라 대출 포트폴리오 조정에 돌입해서다. 정부는 국내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높이고, 은행 보유 주식에 적용되던 RW는 국제 기준에 맞춰 400%에서 250%로 낮췄다. 단기매매 목적의 비상장주식이나 벤처캐피탈 투자에는 400%를 그대로 적용하기로 했다.

위험가중치는 부도 위험이 큰 자산일수록 높은 비율을 적용해 은행에 자본 확충을 요구하는 장치다. 이를 자산 전체에 반영한 위험가중자산(RWA)은 자본 건전성의 핵심 지표다. 비중이 커지면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떨어져 대출 여력이 줄고 자본 부담은 커진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정으로 은행의 연간 신규 주담대 여력이 약 27조원 줄어드는 대신, 기업투자 여력은 약 31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부동산에 쏠렸던 자금이 벤처기업 등 생산적 분야로 유입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건전성 부담을 호소한다. 가계대출 위험가중치를 올려도 기업여신의 위험가중치가 훨씬 높아 리스크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기업대출 확대 국면에서 건전성이 악화된 경험도 있다. 2016년 구조조정 시기에는 기업대출 부실로 은행 건전성이 흔들렸고,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던 중소기업에 대출을 늘린 2023년에도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했다.

최근 지표도 비슷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은행권 전체 기업대출 연체율은 0.60%로 1년 전보다 0.14%포인트 높아졌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74%로 같은 기간 0.16%포인트 상승했다. 주요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 역시 KB국민은행 0.36%(전년 0.33%), 신한은행 0.40%(0.30%), 하나은행 0.46%(0.33%), 우리은행 0.48%(0.32%)로 일제히 올랐다.

일각에서는 이번 자본규제 개선이 시장의 왜곡을 만들어 낼 수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보가 뚜렷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출로 여겨지는 가계대출에 위험가중치를 높여 인위적으로 대출 공급을 조절하는 것은 은행 영업의 기본을 해치는 것이란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기업대출 연체율은 가계대출보다 금리에 민감하고,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며 “생산적 금융 정책 기조에 맞추기 위해 은행들이 대출 포트폴리오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