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2026년을 여는 10대 키워드, AI가 끄는 HORSE POWER”

‘트렌드 코리아 2026’, 인간과 AI의 협력·반작용이 빚어낼 소비 패러다임 담아내

2025-09-24     이윤정 기자

“2026년은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을 펼친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인간 이세돌이 인공지능(AI)을 상대로 던진 승부수 78수처럼, 우리는 AI 시대에 과연 어떤 자기만의 수, 가장 ‘나다운 수’를 낼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

트렌드 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를 이끄는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는 24일 광화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6(미래의창)’ 출간 미디어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발언은 내년의 소비지형도가 단순히 ‘AI의 확산’이 아닌 ‘AI와 인간의 협력과 반작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명예교수가 24일 광화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10대 키워드를 발표하고 있다. / 이윤정 기자 

HORSE POWER, 2026을 움직일 힘

‘트렌드코리아’시리즈는 2008년부터 매년 다음 해를 관통할 키워드를 제시해왔다. 2026년은 말띠해다. 이를 상징적으로 담아낸 키워드가 ‘호스 파워(HORSE POWER)’이다. 말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빠른 힘으로 여겨져 왔고, 증기기관 발명 당시 와트가 동력의 기준을 말의 힘으로 환산했던 것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말이 상징하는 힘과 속도, 그리고 인간적 지혜가 결합된 ‘켄타로스(Centaurus)’의 이미지를 모티프로 삼았다. 하체는 인공지능의 기계적 힘을, 상체는 인간적 사유와 지혜를 나타내는 상징적 구도다.

김 교수는 “요새 경기가 침체한데 강인한 말처럼 힘을 내면 좋겠다는 뜻에서 ‘HORSE POWER’를 정했다”며 “인간과 인공지능의 상호작용을 담은 상징으로 켄타로스를 제시하며 책에 이러한 의미를 담아냈다”고 말했다.

AI와 인간, 협력의 원칙 ‘휴먼인더루프와 AX조직’

10대 키워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휴먼인더루프(Human-in-the-loop)’다. AI가 거의 모든 것을 생성하는 시대에도 인간은 반드시 최소 한 번은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AI 시대의 승자는 ‘빠른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 위에서 가장 현명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라는 메시지다.

조직 차원에서는 ‘AX조직(Efficient Organizations through AI Transformation)’이 핵심이다.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고 프로젝트 기반으로 재편하는 ‘울트라 플랫’ 구조, 상하 간 거리를 줄이는 ‘제로 디스턴스’ 문화가 확산된다. 단순한 AI 도입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와 문화 자체가 AI 활용에 맞게 변모한다는 전망이다.

소비 패러다임, 기분·데이터·가격을 다시 읽다

AI가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의 본질은 ‘기분’이다. ‘필코노미(Oh, my feelings! The Feelconomy)’는 감정을 진단하고 관리하며 소비로 전환하는 흐름이다. 넷플릭스의 기분 큐레이션, 웰니스 디바이스의 감정 측정 등 기분 자체가 돈이 되는 시대다.

또 하나의 변화는 ‘제로클릭(Results on Demand: Zero-click)’이다. 사용자의 검색과 클릭 이전에 알고리즘이 먼저 제안하고, 소비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검색이 줄어들면서 온라인 마케팅의 방식도 바뀌고 있다. 앞으로는 GPT 같은 답변 엔진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제품이나 기사가 바로 노출될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답변 엔진 최적화(AEO)’라고도 한다

소비자의 태도도 합리적으로 바뀐다. ‘프라이스 디코딩(Observant Consumers: Price Decoding)’은 가격을 단순히 수용하지 않고, 구성 요소와 가치를 해독해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행태다. 소비자는 더 이상 브랜드만을 맹신하지 않는다.

삶의 방식, 준비·경험·건강·가구의 재해석

불확실성을 관리하려는 태도는 ‘레디코어(Self-directed Preparation: Ready-core)’로 나타난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치밀한 예행연습과 준비에 집착하는 세대다.

생활에서는 ‘픽셀라이프(Pixelated Life)’가 확산된다. 디지털 픽셀처럼 작고 많고 빠른 경험을 추구하며, 거대한 트렌드 대신 수많은 미시적 경험에 몰입한다.

건강 역시 지능으로 관리된다. 과거에는 지능(IQ)이나 감성지능(EQ)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건강 상태와 관련 지식을 탐색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건강지능 HQ(Widen your Health Intelligence)’는 건강 상태와 관련 정보를 탐색하고 활용해 자기 관리를 실천하는 역량을 말한다. 건강관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HQ라는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가구 형태는 ‘1.5가구(Everyone Is an Island: the 1.5 Households)’라는 개념으로 진화한다. 절대적 자율성(1)을 지키면서도 부분적 연결(0.5)을 추구하는 삶의 양식이다. 초솔로사회가 만들어낸 현실적이자 실용적인 형태다.

근본으로의 회귀, 디지털 시대의 향수

마지막 키워드는 ‘근본이즘(Returning to the Fundamentals)’이다. 디지털로 예측되지 않는 안정적 가치를 찾으려는 흐름이다. 과거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적 향수, ‘아네모이아(Anemoia)’라는 새로운 감각이 젊은층 사이에서 나타난다. 김 교수는 “AI가 발전할수록 인간만이 가진 근본적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 AI와 인간이 함께 만드는 미래

이제 AI를 빼고는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효율성을 찬양하거나 부작용을 경계하는 양분법적 시각도 위험하다. 

김난도 교수는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완하고 성장하게 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그 해를 움직이는 동력은 인간과 AI가 함께 만들어내는 'HORSE POWER'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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