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생명에 대규모 자본확충 산은… 이번엔 감자카드 통하나

무상감자·유상증자 카드로 자본잠식 해소 시도

2025-09-29     전대현 기자

KDB생명이 무상감자를 단행한다. 자본잠식 문제를 해소하고 건전성을 개선해 기업 체질을 바꾸기 위함이다. 불안정한 재무 구조 탓에 10년 넘도록 원매자를 찾지 못했던 만큼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기업가치를 높인 뒤 매각을 재추진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KDB생명이 무상감자를 단행한다 / KDB생명

27일 KDB생명에 따르면 회사는 내달 15일 서울 동자동 본사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무상감자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감자 비율은 83.33%다. 보통주 9966만5129주 가운데 8305만4275주를 소각해 자본금을 4983억원에서 831억원으로 줄인다. 감자기준일은 11월 17일, 신주권교부는 12월 1일 이뤄질 예정이다.

이번 감자의 핵심은 장부상 결손금을 지우는 데 있다. 자본금을 줄이면서 4152억원의 회계상 이익(감자차익)이 생기는데 이 돈으로 쌓여 있던 결손금 160억원을 모두 털어낸다는 구상이다. 결손금을 없애면 매각이나 증자 협상에서 걸림돌이 줄어든다.

현재 KDB생명은 2분기 연속 자본잠식 상태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자본총계는 -1242억원이다. 금리 하락으로 보험 부채 평가액이 불어나면서 장부상 손실(기타포괄손익누계액)이 1조3274억원까지 늘어난 영향이다.

보험사 핵심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K-ICS)도 불안하다. 상반기 말 기준 경과조치를 적용한 K-ICS 비율은 176.6%로 금융당국 권고치(150%)를 웃돌지만 경과조치를 제외할 경우 43.3%로 떨어진다.

경과조치는 2023년 K-ICS를 도입하면서 보험사들이 급격한 재무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금융당국이 마련해 준 일종의 완충제다. 새로운 회계제도(IFRS17)로 인한 변화를 한꺼번에 적용할 경우 충격이 너무 크기에 10년에 걸쳐 조금씩 나눠 반영하도록 유예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장부상 비율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완충장치가 사라지면 근본적인 자본 확충 없이는 버티기 어렵다.

업계에는 산업은행이 유상증자 참여를 통해 약 1조~1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 투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상감자로 결손금을 털어낸 뒤 증자를 단행하면 자본금이 다시 늘어나고 K-ICS 비율도 개선된다. 업계에서는 자본 확충이 이뤄질 경우 K-ICS 비율이 120% 안팎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예정대로 자본확충이 이뤄지면 그간 산업은행이 KDB생명에 투자한 자금은 최대 3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KDB생명은 2023년에도 같은 절차를 밟은 바 있다. 당시 무상감자와 유상증자를 거친 이후 하나금융지주와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당시에도 낮은 건전성이 발목을 잡았다. 2014년 이후 여섯 차례 매각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산업은행이 칸서스자산운용과 함께 만든 사모펀드의 15년 만기가 도래하면서 지난 3월 산업은행 자회사로 편입됐다. 사모펀드는 통상 15년 이상 장기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라 약속된 운용 기간이 끝나자 산은이 지분을 직접 떠안은 것이다.

산업은행은 KDB생명의 자본 확충과 함께 스스로 설 수 있는 영업 기반을 다지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우선 지난 3월 김병철 전 푸본현대생명 상무를 부사장으로 영입하면서 저축성보험에 쏠려 있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를 본격화했다. 김병철 부사장은 보험설계사 출신으로 20년 넘게 현장에서 활동해온 ‘영업통’이다. 

김병철 KDB생명 부사장 / KDB생명

현재 김병철 부사장은 보장성 상품 판매를 강화해 본업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제3보험 중심으로 상품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보장성 보험 비중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올 상반기 제3보험을 포함한 사망보험 수입보험료 비중은 66.4%로 지난해 말 63.7%보다 늘었다. 

재무 및 영업 조직도 손봤다. 지난 5월 iM라이프 출신 정진택 전무를 재무전략그룹장으로, 푸본현대생명 출신 남규현 상무를 전속채널실장으로 각각 선임했다. 영업과 재무 양쪽에서 신규 인사를 채용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다만 회사 경영을 책임질 대표이사 자리는 공석이다. 임승태 전 대표 임기가 지난 3월 끝난 이후 사실상 김병철 부사장이 회사를 이끌고 있지만 정식 대표 선임은 반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 신임 회장이 내정되면서 대표 인선도 조만간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자본잠식 상태의 회사가 장기간 대표 부재 상황을 이어가는 것은 불안 요인으로 지적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무상감자가 매각 재추진의 포석이라 본다. 자본잠식 상태를 그대로 두면 원매자가 나타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원매자 입장에서는 구주 매입 대금 외에도 건전성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한 추가 자본 투입 부담이 크다.

다만 변수가 적지 않다. 금리가 인하 국면에 접어들면서 보험 부채가 다시 불어나 자본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 금융당국이 자본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부담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무상감자와 증자로 단기적인 숨통은 트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수익 구조 개선이 기반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