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생산적 금융·AI 대전환 선언… 연임 앞둔 ‘새판짜기’ 승부수
내년 3월말 임기만료 앞두고 연임 의지로도 해석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정부 기조에 맞춘 ‘생산적 금융’으로의 경영방식 변화를 예고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AI(인공지능) 기반의 경영 혁신도 천명했다. 우리금융의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다.
주요 금융 계열사 가운데 회장이 직접 ‘프로젝트’의 출범을 선언한 건 우리금융이 처음이다. 지난 3년간 증권·보험사 인수를 마무리하며 우리금융을 종합금융사로 정비한 임 회장이 임기 만료를 앞둔 만큼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우리금융은 29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우리금융 미래동반성장 프로젝트 브리핑’을 열고 2030년까지 생산적 금융과 포용 금융에 각각 73조원, 7조원씩 총 80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임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다. 임 회장은 “대통령이 생산적 금융의 필요성을 강조한 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금융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에는 임 회장을 비롯해 정진완 은행장과 증권·보험·저축은행·자산운용·벤처파트너스·PE 등 자회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자 장사’에서 벗어나 기업금융 확대 선언
우리금융은 생산적 금융에 73조원을 쏟아붓는다. 구체적으로 ▲국민성장펀드 참여 10조원 ▲그룹 자체 투자 7조원 ▲융자 56조원으로 구성된다.
국민성장펀드 10조원은 지난달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구상에 발맞춘 민간 첫 참여 사례다. 150조원 중 75조원을 민간 자금에서 구성하는데, 이 중 13%를 우리금융이 지원하는 셈이다.
포용 금융 7조원은 금융취약계층과 소상공인 지원에 투입된다. 대표적으로 7등급 이하 저신용 고객의 대출금리를 인하한다. 신규 저신용 고객에게는 0.3%포인트(p)를, 기존 성실 상환 고객 중 4~7등급에는 0.4%p, 8등급 이하에는 1.5%p를 각각 인하해 역차별 논란도 없앴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로 지난 5년간 4% 수준이던 기업대출 증가율을 앞으로 10%까지 끌어올리고, 그룹 전체 기업 대출 비중을 현재 50%에서 60%까지 확대한다는 청사진도 밝혔다.
주택담보·임대사업자 대출 등을 첨단산업 대출로 전환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위험가중치(RW) 조정분을 생산적 금융에 우선 반영해 자본 건전성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임 회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재무안정성 시뮬레이션을 지속해 왔다”며 “연말 그룹 보통주자본비율(CET1) 12.5% 달성과 배당 확대 등 밸류업 계획은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영방식, 싹 바꾼다…AI 혁신에 속도
임 회장은 “생산적 금융 강화, 포용 금융 확대라는 선언적인 것은 의미가 없다”며 “대상 선정에서부터 심사 등의 일련의 과정과 시스템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AI를 통해 이를 구현할 것”이라며 “AI 기반의 경영 시스템 전환을 통해 미래 동반 성장에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우리금융은 AI 기반 경영시스템 전환으로 생산적 금융, 투자 중심 금융지원을 위한 효율적 의사결정과 속도 향상, 리스크관리 고도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그룹 AX(AI 대전환)를 위해 거버넌스, 성과평가, 인프라 등의 추진체계를 구축한 상태다. 우선 기업여신 영역에 AI에이전트를 도입하기로 했다. 서류 등록부터 지원대상 선정, 심사 지원, 서류 진위 및 정보 검수, 여신 사후관리 등 기업여신 프로세스 전반에 AI지원 기능이 도입된다.
기업금융전문가인 RM들도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는다. 앞으로는 AI가 여러 곳에 분산된 영업 및 상품 정보를 통합 분석해 RM들에게 제공하고, 사후관리 역시 AI가 담당케 해 업무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금융은 AX 우선 도입 예정인 190개 업무 중 생산적 금융과 관련된 50여 개를 우선 추진할 계획이다.
내년 3월 임기 만료… 연임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이번 우리금융의 프로젝트가 임기 만료를 앞둔 임 회장의 연임 의지라는 해석도 나온다. 임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로 올 연말에는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승계 절차에 나서야 한다.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에 따르면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경영승계절차가 개시돼야 해서다.
금융권 안팎에선 연임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실적과 경영 능력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지만 잇따른 내부통제 실패 등은 걸림돌이다.
우리금융의 지난해 그룹 순이익은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고 증권·보험사 인수로 비은행부분의 실적 개선이 이뤄지면 순이익 증가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다만 내부통제는 아쉽다. 직원의 금융사고 외에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 적발됐다. 내부통제 부실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기존 2등급에서 3등급으로 떨어진 것은 부담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전 금융권이 정부 기조에 맞춰 생산적 금융 전환을 위해 중기 대출을 포함한 기업 대출을 늘리는 등 대출 포트폴리오 조정에 돌입한 상황”이라면서 “이런 시기에 임종룡 회장이 직접 프로젝트 발표와 의지를 드러낸 것은 연임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